살레이야까 숫따(살라 마을 사람들)

Sāleyyakasutta

맛지마 니까야 MN 41

몸·말·마음으로 짓는 열 가지 행위가 다음 생의 좋고 나쁨을 가른다고 설명한다.

인용된 가르침 3구절

이 경을 1개 대목으로 나누어 읽습니다.

1 좋은 행위의 열 가지 - 구체적 실천 목록 3구절

몸으로 셋, 말로 넷, 마음으로 셋 - 부처님이 제시한 선한 행위의 완전한 목록

수행자들이여, 이간질을 하지 않는 자는 이쪽에서 들은 것을 저쪽에 가서 말하지 않으며, 저쪽에서 들은 것을 이쪽에 와서 말하지 않는다. 그는 갈라진 자를 화합시키고, 화합한 자를 더 단합하게 하며, 화합을 즐기고, 화합을 기뻐하며, 화합을 가져오는 말을 한다.

Pisuṇaṃ vācaṃ pahāya pisuṇāya vācāya paṭivirato hoti; ito sutvā na amutra akkhātā imesaṃ bhedāya... samaggānaṃ vā bhettā.

맛지마 니까야 MN 41 살레이야까 숫따 (살라 마을 사람들)

배경

열 가지 중 ‘이간질을 하지 않음’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부처님은 ‘하지 말라’는 말에 머물지 않고, 갈라진 자를 화합시키고 화합한 자를 더 단합하게 하라는 대체 행위를 제시하십니다. 이간질의 반대는 화합을 위한 적극적 행위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이간질은 매우 미묘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네 얘기 하더라’, ‘걔가 이러더라’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직접적 욕은 아니지만, 관계를 갈라놓는 말입니다. 온라인 공간이나 대화방에서 오가는 뒷담화도 모두 이 범주입니다.

묵상

최근에 누군가에 대해 제3자와 이야기한 적이 있나요? 그 대화가 관계를 가깝게 했나요, 갈라놓았나요? 다음에 그런 상황이 오면, 갈라놓는 말 대신 화합하는 말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수행자들이여, 쓸데없는 잡담을 삼가는 자는 때에 맞게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며, 가르침을 말하고, 규범을 말한다. 그의 말은 보배와 같아서, 적절하고, 이유가 있으며, 한계가 있고, 이익이 있다.

Samphappalāpaṃ pahāya samphappalāpā paṭivirato hoti; kālavādī bhūtavādī atthavādī dhammavādī vinayavādī; nidhānavatiṃ vācaṃ bhāsitā kālena sāpadesaṃ pariyantavatiṃ atthasaṃhitaṃ.

맛지마 니까야 MN 41 살레이야까 숫따 (살라 마을 사람들)

배경

부처님은 잡담을 그친 자리에 둘 구체적인 말을 제시하십니다. “보배와 같은 말”입니다. 적절하고, 이유가 있으며, 한계가 있고, 이익이 있는 말. “한계가 있다(빠리얀따와띠)”는 표현이 인상적입니다. 끝이 있는 말, 필요한 만큼만 하는 말입니다. 현대인의 말 사용량을 생각해 보십시오. 카톡, 문자, 댓글, 소셜미디어 게시글이 그 예입니다. 그 중에서 “보배와 같은 말”이 얼마나 됩니까? 부처님 시대에도 잡담은 수행의 큰 장애였습니다. 수행자들이 모이면 왕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에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은 연예인 이야기, 정치 이야기, 남의 이야기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묵상

오늘 한 말의 총량을 가늠해 보세요. 그중 “보배와 같은 말”, 곧 적절하고 유익하고 한계가 있는 말은 몇 퍼센트인가요? 내일은 그 비율을 10%만 높여보면 어떨까요?

수행자들이여, 마음으로 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이렇게 안다. ‘베풂에는 과보가 있고, 음식을 올림에는 과보가 있고, 제사를 올림에는 과보가 있으며,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에는 결과가 있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의무가 있으며, 이 세상에 올바르게 수행하여 스스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선언하는 자들이 있다.’

Sammādiṭṭhiko hoti - atthi dinnaṃ, atthi yiṭṭhaṃ, atthi hutaṃ, atthi sukatadukkaṭānaṃ kammānaṃ phalaṃ vipā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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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열 가지 선한 행위 가운데 마지막이자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른 견해입니다. 나머지 아홉 가지가 “무엇을 하고 하지 않을 것인가”라면, 바른 견해는 “왜 그래야 하는가”의 기반입니다. 베풂에 과보가 있다고 믿어야 베풉니다. 행위에 결과가 있다고 알아야 행위를 조심합니다. 이는 관찰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선한 행위를 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악한 행위를 하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적 확인이 바른 견해의 시작입니다.

묵상

열 가지 선한 행위의 여정을 되돌아볼까요? 몸으로 짓는 살생·도둑질·음행에서 말로 짓는 거짓·이간질·거친 말·잡담으로, 다시 마음으로 짓는 탐냄·악의·그릇된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바깥인 몸에서 가장 안쪽인 마음으로 들어가고, 그 마지막이 바른 견해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확신이 지금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