랏타빨라 존자가 대답하였다.
“대왕이여, 알고 보시는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으신 세존께서
네 가지 가르침의 요약을 말씀하셨느니라.
나는 그것을 알고 보고 들은 뒤 출가하였노라.
첫째,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첫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니라.”
“Atth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dhammuddesā uddiṭṭhā, ye 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Katame cattāro? ‘Upaniyyati loko addhuvo’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paṭham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왕의 거듭된 질문에 랏타빨라가 마침내 답을 내놓는 장면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세존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 가르침의 요약"을 알고 보고 들었기에 출가했다고 밝힙니다. 이 네 문장은 앞으로 하나씩 왕과의 문답을 거치며 그 뜻이 풀이됩니다. 첫 번째 문장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는 무상함을 가리키는 말로, 이어지는 대화의 출발점이 됩니다.
묵상
누군가 나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배워서 알게 된 것을 근거로 답한 적이 있나요? 그 배움은 어디에서, 어떻게 나에게 스며들었는지 천천히 되짚어 보세요.
“둘째, ‘세상에는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니라.
셋째,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니라.”
‘Atāṇo loko anabhissaro’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utiy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tatiy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랏타빨라가 밝히는 네 문장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입니다.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는 말은 누구도 대신 겪어 줄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뜻이며, "진정한 소유자가 없다"는 말은 죽음 앞에서는 무엇도 온전히 내 것으로 지닐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두 문장은 각각 이어지는 왕과의 대화에서 병과 재산이라는 구체적인 예로 하나씩 풀이됩니다. 첫 번째 문장이 몸으로 확인되었듯, 나머지 세 문장도 왕 자신의 삶에서 하나씩 검증됩니다.
묵상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결국 나 대신 겪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적이 있나요? 그리고 죽음 앞에서는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 두 가지 사실은 나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오나요?
“넷째,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애의 종이다.’
이것이 세존께서 말씀하신
네 번째 가르침의 요약이니라.
대왕이여, 세존께서 말씀하신 이 네 가지를
알고 보고 들은 뒤
나는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갔노라.”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uttho dhammuddeso uddiṭṭho,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Ime kho,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cattāro dhammuddesā uddiṭṭhā, ye 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네 문장 가운데 마지막 문장과, 그 전체를 마무리하는 랏타빨라의 말입니다. "갈애의 종"이라는 표현에서 "갈애"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같은 집착을 뜻하는 빠알리어 딴하를 옮긴 말입니다. 이렇게 네 문장을 모두 밝힌 랏타빨라는, 이것이 자신이 출가한 온전한 이유였다고 다시 한번 밝힙니다. 이제 왕은 이 네 문장을 하나씩 짚으며 그 뜻을 캐묻기 시작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손에 넣어도 곧 다음 것을 원하게 되는 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이유는 대상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마음 자체의 성질 때문일까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본 적이 있나요?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스무 살이나 스물다섯 살 때
코끼리와 말과 전차를 잘 다루고
활과 칼에도 능하며,
다리와 팔에 힘이 있고
싸움에 익숙했느냐?”
“그러했소. 때로는 신통력이 있는 듯했고,
힘으로 나와 견줄 이를 보지 못했소.”
“‘Upaniyyati loko addhuvo’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tvaṁ vīsativassuddesikopi paṇṇavīsativassuddesikopi hatthismimpi katāvī assasmimpi katāvī rathasmimpi katāvī dhanusmimpi katāvī tharusmimpi katāvī ūrubalī bāhubalī alamatto saṅgāmāvacaro”ti? “Ahosiṁ ahaṁ, bho raṭṭhapāla, vīsativassuddesikopi paṇṇavīsativassuddesikopi hatthismimpi katāvī assasmimpi katāvī rathasmimpi katāvī dhanusmimpi katāvī tharusmimpi katāvī ūrubalī bāhubalī alamatto saṅgāmāvacaro. Appekadāhaṁ, bho raṭṭhapāla, iddhimāva maññe na attano balena samasamaṁ samanupassāmī”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왕이 첫 번째 문장의 뜻을 묻자, 랏타빨라는 곧바로 답을 주는 대신 왕에게 되묻습니다. 젊은 시절 코끼리와 말과 전차를 다루고 활과 칼에 능했는지, 힘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왕은 그 시절을 자랑스럽게 회고하며 "힘으로 나와 견줄 이를 보지 못했다"고 답합니다. 이 자신만만한 회고가 다음 장면에서 뒤집히며 무상함의 뜻이 드러납니다.
묵상
한때 자신 있었던 능력이나 힘을 되돌아보며 그 시절을 자랑스럽게 떠올린 적이 있나요?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나를 나란히 놓고 본다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그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나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강하고 싸움에 익숙하냐?”
“아니오. 지금은 늙어 여든 살이오.
때로는 이곳에 발을 디디려 해도
다른 곳에 디디게 되오.”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세존께서
‘세상은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세존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은 정말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가오.”
evameva tvaṁ etarahi ūrubalī bāhubalī alamatto saṅgāmāvacaro”ti? “No hidaṁ, bho raṭṭhapāla. Etarahi jiṇṇo vuḍḍho mahallako addhagato vayoanuppatto āsītiko me vayo vattati. Appekadāhaṁ, bho raṭṭhapāla, ‘idha pādaṁ karissāmī’ti aññeneva pādaṁ karomī”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upaniyyati loko addhuvo’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upaniyyati loko addhuvo’ti. Upaniyyati hi, bho raṭṭhapāla, loko addhuvo.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랏타빨라의 되물음에 왕은 이제 여든 살이 되어 발을 디디려 해도 다른 곳에 디디게 될 만큼 몸이 약해졌다고 고백합니다. 젊은 시절의 힘과 지금의 몸을 나란히 놓고 보니, 세존께서 말씀하신 "안정되지 않고 휩쓸려 간다"는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왕 자신의 몸에서 그대로 확인됩니다. 왕은 이 말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첫 번째 문장에 스스로 동의합니다. 관념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확인했다는 점이 이 대화의 힘입니다.
묵상
예전에는 당연히 되던 일이 이제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느껴 본 순간이 있었나요? 그 변화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과 싸우려 했나요, 아니면 있는 그대로 알아보려 했나요?
“이 왕실에는 코끼리 부대와 기병과
전차 부대와 보병이 있어
어려움이 닥치면 지켜 줄 것이오.
그런데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고 했소.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오래된 병이 있느냐?”
“있소. 때로 벗과 친척들이 나를 둘러싸고
‘이제 왕이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오.”
“그들에게 ‘모두 내 고통을 나누어
덜 아프게 해 달라’고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오직 대왕이 느껴야 하느냐?”
Saṁvijjante kho, bho raṭṭhapāla, imasmiṁ rājakule hatthikāyāpi assakāyāpi rathakāyāpi pattikāyāpi, amhākaṁ āpadāsu pariyodhāya vattissanti. ‘Atāṇo loko anabhissaro’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pan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atthi te koci anusāyiko ābādho”ti? “Atthi me, bho raṭṭhapāla, anusāyiko ābādho. Appekadā maṁ, bho raṭṭhapāla,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parivāretvā ṭhitā honti: ‘idāni rājā korabyo kālaṁ karissati, idāni rājā korabyo kālaṁ karissatī’”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labhasi tvaṁ te mittāmacce ñātisālohite: ‘āyantu me bhonto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sabbeva santā imaṁ vedanaṁ saṁvibhajatha, yathāhaṁ lahukatarikaṁ vedanaṁ vediyeyyan’ti— udāhu tvaṁyeva taṁ vedanaṁ vediyasī”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두 번째 문장에 대해 왕은 자신의 군대가 어떤 어려움에서든 지켜 줄 것이라 자신하지만, 랏타빨라는 몸의 병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화제를 옮깁니다. 아무리 많은 군대와 신하가 곁에 있어도, 정작 병으로 인한 고통 그 자체는 누구도 대신 나누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왕 스스로 확인하도록 이끄는 질문입니다. 군대라는 바깥의 힘과 병이라는 몸 안의 일이 서로 다른 영역임을 짚는 셈입니다.
묵상
아무리 많은 사람이 곁에 있어도, 결국 나 혼자 감당해야 했던 아픔이 있었나요? 그 순간 곁에 있던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되었고, 어떤 부분에서는 그럴 수 없었나요? 그 한계를 알고 나서 관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나요?
“그들에게 나누게 할 수 없소.
오직 내가 느껴야 하오.”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세존께서
‘세상에는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세존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에는 정말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소.”
“Nāhaṁ, bho raṭṭhapāla, labhāmi te mittāmacce ñātisālohite: ‘āyantu me bhonto mittāmaccā ñātisālohitā, sabbeva santā imaṁ vedanaṁ saṁvibhajatha, yathāhaṁ lahukatarikaṁ vedanaṁ vediyeyyan’ti. Atha kho ahameva taṁ vedanaṁ vediyāmī”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atāṇo loko anabhissaro’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ṁ 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atāṇo loko anabhissaro’ti. Atāṇo hi, bho raṭṭhapāla, loko anabhissaro.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왕은 결국 자신의 고통을 누구에게도 나누어 줄 수 없고 오직 스스로 느껴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코끼리 부대와 기병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이 고독한 사실 앞에서, 세존께서 말씀하신 "피난처도 구원자도 없다"는 두 번째 문장의 뜻이 분명해집니다. 왕은 다시 한번 "정말 그렇다"며 감탄합니다. 힘과 재물로 가장 든든해 보이던 사람의 입에서 나온 고백이라 더 무겁게 다가옵니다.
묵상
힘든 순간에 누군가 대신 아파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게 느껴진 적이 있나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는 오히려 무엇이 더 선명해지던가요?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외로움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왕실에는 땅 위와 땅 아래에 보관한
금화와 금붙이가 아주 많소.
그런데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고 했소.
그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지금 다섯 가지 감각적 즐거움을
갖추어 누리듯이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누리리라고 보장할 수 있느냐?
아니면 다른 이들이 이 재산을 차지하고,
대왕은 자기 행위에 따라 가야 하느냐?”
“다음 세상에서도 똑같이 누리리라고
보장할 수 없소.”
Saṁvijjati kho, bho raṭṭhapāla, imasmiṁ rājakule pahūtaṁ hiraññasuvaṇṇaṁ bhūmigatañca vehāsagatañca.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pan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yathā tvaṁ etarahi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si, lacchasi tvaṁ paratthāpi: ‘evamevāhaṁ imeheva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mī’ti, udāhu aññe imaṁ bhogaṁ paṭipajjissanti, tvaṁ pana yathākammaṁ gamissasī”ti? “Yathāhaṁ, bho raṭṭhapāla, etarahi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mi, nāhaṁ lacchāmi paratthāp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세 번째 문장에 대해 왕은 이번에는 땅 위아래에 쌓아 둔 막대한 금을 근거로 듭니다. 랏타빨라는 그 재산이 지금 여기서는 누릴 수 있어도, 다음 생에서도 똑같이 이어질 수 있을지를 되묻습니다. 왕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죽음의 문턱을 함께 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이 짧은 문답 속에서 조용히 드러납니다. 이 문답의 힘은 랏타빨라가 재산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다음 생과의 관계만을 조용히 물었다는 데 있습니다.
묵상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언젠가는 나를 떠나거나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는 사실을, 얼마나 자주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나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재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이들이 재산을 차지하고
나는 내 행위에 따라 가야 하오.”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세존께서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느니라.”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세존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에는 정말
진정한 소유자가 없고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하오.”
‘evameva imeheva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mī’ti. Atha kho aññe imaṁ bhogaṁ paṭipajjissanti; ahaṁ pana yathākammaṁ gamissāmī”ti.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ṁ 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assako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n’ti. Assako hi, bho raṭṭhapāla, loko sabbaṁ pahāya gamanīyaṁ.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왕은 결국 자신이 죽은 뒤에는 재산을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자신은 오직 스스로 지은 행위에 따라 가야 한다고 인정합니다. 이로써 세존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문장, "세상에는 진정한 소유자가 없으니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 한다"는 말의 뜻이 왕 자신의 재산을 통해 확인됩니다. 이제 마지막 네 번째 문장, 만족을 모르는 세상에 대한 대화가 뒤이어 펼쳐집니다.
묵상
내가 죽은 뒤에 남길 것과, 내가 끝까지 지니고 갈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지금 시간을 쏟고 있는 일 가운데 정말로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그 앎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재산을 붙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지는 않나요?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애의 종이다’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오?”
“대왕이여, 번영한 꾸루국을
다스리고 있느냐?”
“그렇소.”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bhavaṁ raṭṭhapālo āha. Imassa, bho raṭṭhapāla, bhāsitassa kathaṁ attho daṭṭhabbo”ti?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phītaṁ kuruṁ ajjhāvasasī”ti? “Evaṁ, bho raṭṭhapāla, phītaṁ kuruṁ ajjhāvasāmī”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왕과의 대화도 이제 마지막 네 번째 문장에 이릅니다. 랏타빨라는 이번에도 곧바로 설명하는 대신, 왕이 다스리는 꾸루국이 얼마나 번영한 나라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이 물음은 아무리 크고 풍요로운 나라를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의 성질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됩니다. 왕은 짧게 "그렇소"라고 답하며 대화에 응합니다. 만족을 모르는 마음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넉넉한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점이 이 대화의 핵심입니다.
묵상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스스로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느낌은 오래갔나요, 아니면 금세 다음 바람으로 옮겨 갔나요? 그 다음 바람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는지도 함께 떠올려 보세요.
“믿을 만한 사람이 동쪽에서 와서
말한다 하자.
‘대왕이여, 그곳에서 번영하고
사람이 아주 많은 큰 나라를 보았습니다.
코끼리 부대와 기병과 전차 부대와 보병이 많고,
돈과 곡식이 많으며, 금이 많고,
차지할 여인도 많습니다.
지금 가진 군대만으로 정복할 수 있으니
정복하십시오.’
그대는 어찌하겠느냐?”
“정복하여 다스리겠소.”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idha puriso āgaccheyya puratthimāya disāya saddhāyiko paccayik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yagghe, mahārāja, jāneyyāsi, ahaṁ āgacchāmi puratthimāya disāya? Tatthaddasaṁ mahantaṁ janapadaṁ iddhañceva phītañca bahujanaṁ ākiṇṇamanussaṁ. Bahū tattha hatthikāyā assakāyā rathakāyā pattikāyā; bahu tattha dhanadhaññaṁ; bahu tattha hiraññasuvaṇṇaṁ akatañceva katañca; bahu tattha itthipariggaho. Sakkā ca tāvatakeneva balamattena abhivijinituṁ. Abhivijina, mahārājā’ti, kinti naṁ kareyyāsī”ti? “Tampi mayaṁ, bho raṭṭhapāla, abhivijiya ajjhāvaseyy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랏타빨라는 가상의 상황을 하나 제시합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찾아와, 동쪽에 정복하기 쉬운 크고 풍요로운 나라가 있다고 알려 준다면 어찌하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왕은 망설임 없이 "정복하여 다스리겠다"고 답합니다. 이미 번영한 나라를 다스리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려는 마음이 곧바로 드러난 것입니다. 다음 장면에서 이 물음은 서쪽과 북쪽과 남쪽으로도 똑같이 되풀이됩니다.
묵상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손쉽게 더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흔들리던가요? 그 순간의 망설임 없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요? 그 흔들림을 알아차린 뒤에는 어떤 선택을 했나요?
“서쪽에서 온 사람도, 북쪽에서 온 사람도,
남쪽에서 온 사람도
같은 말을 한다면 어찌하겠느냐?
또 바다 건너에서 온 믿을 만한 사람이
다가와 같은 말을 한다 하자.”
“Taṁ kiṁ maññasi, mahārāja, idha puriso āgaccheyya pacchimāya disāya … uttarāya disāya … dakkhiṇāya disāya … parasamuddato saddhāyiko paccayiko. So taṁ upasaṅkamitvā evaṁ vadeyya: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동쪽에 이어 랏타빨라는 서쪽과 북쪽과 남쪽에서도 똑같은 제안이 온다면 어찌할 것인지 되풀이해 묻습니다. 왕의 대답은 매번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이어 랏타빨라는 이번에는 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의 제안까지 언급하며, 이 물음의 범위를 세상 끝까지 넓힙니다. 사방과 바다 건너까지 정복해도 만족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음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묵상
하나를 이루고 나면 다음, 그다음을 계속 바라게 되는 마음의 흐름을 스스로 느껴 본 적이 있나요? 그 흐름은 어디쯤에서 멈출 수 있을 것 같나요? 그 흐름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그곳에서 번영하고 사람이 아주 많은
큰 나라를 보았습니다.
코끼리 부대와 기병과 전차 부대와 보병이 많고,
돈과 곡식이 많으며, 금이 많고,
차지할 여인도 많습니다.
지금 가진 군대만으로 정복할 수 있으니
정복하십시오.’
그대는 어찌하겠느냐?”
“그곳도 정복하여 다스리겠소.”
‘yagghe, mahārāja, jāneyyāsi, ahaṁ āgacchāmi parasamuddato? Tatthaddasaṁ mahantaṁ janapadaṁ iddhañceva phītañca bahujanaṁ ākiṇṇamanussaṁ. Bahū tattha hatthikāyā assakāyā rathakāyā pattikāyā; bahu tattha dhanadhaññaṁ; bahu tattha hiraññasuvaṇṇaṁ akatañceva katañca; bahu tattha itthipariggaho. Sakkā ca tāvatakeneva balamattena abhivijinituṁ. Abhivijina, mahārājā’ti, kinti naṁ kareyyāsī”ti? “Tampi mayaṁ, bho raṭṭhapāla, abhivijiya ajjhāvaseyyāmā”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바다 건너에서 온 사람이 앞서와 똑같은 말로 풍요로운 나라를 알려 주자, 왕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그곳도 정복하여 다스리겠다"고 답합니다. 이미 번영한 나라를 다스리면서도, 동서남북과 바다 건너까지 모두 가지려 하는 이 대답 속에서 만족을 모르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랏타빨라는 이제 이 대답을 근거로 마지막 문장의 뜻을 밝힙니다. 왕 스스로 내놓은 대답이 곧 세존의 말씀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는 점이 이 문답 전체의 구조입니다.
묵상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더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 스스로도 놀란 순간이 있었나요? 그 마음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나요? 그 순간 나는 그 마음을 어떻게 다루었나요?
“대왕이여, 바로 이것을 두고 세존께서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애의 종이다’라고
말씀하셨느니라.”
왕이 말하였다.
“놀랍고도 훌륭하오. 세존께서 참으로
잘 말씀하셨소. 세상은 정말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애의 종이오.”
“Idaṁ kho taṁ, mahārāj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ndhāya bhāsitaṁ: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yamahaṁ ñatvā ca disvā ca sutvā ca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ti. “Acchariyaṁ, bho raṭṭhapāla, abbhutaṁ, bho raṭṭhapāla. Yāva subhāsit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ūno loko atitto taṇhādāso’ti. Ūno hi, bho raṭṭhapāla, loko atitto taṇhādāso”ti.
맛지마 니까야 MN 82 랏타빨라경 (Raṭṭhapālasutta) 배경
세상 끝까지 정복해도 만족하지 않겠다는 왕 자신의 대답을 통해, 마지막 네 번째 문장 "세상은 모자라고 만족할 줄 모르며 갈애의 종이다"의 뜻이 확인됩니다. 이로써 왕은 랏타빨라가 밝힌 네 문장 모두에 스스로 동의하게 됩니다. 자신의 몸과 병과 재산과 욕심을 하나씩 짚어 가며 얻어 낸 이 동의는, 남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확인한 앎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묵상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기보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 직접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 것이 있나요? 그렇게 확인한 앎은 전해 들은 것과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나요? 그런 확인의 과정을 지금 내 삶에서도 시도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