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여러 수행자가 회당에 모여 말했습니다. “놀랍습니다, 벗들이여. 경이롭습니다, 벗들이여. 알고 보는 아라한·정등각자 세존께서는 존재들의 서로 다른 성향을 잘 아십니다. 숫삐야는 삼보를 헐뜯고 제자는 칭찬하며, 스승과 제자가 서로 정반대로 말한 채 세존과 승가의 뒤를 따릅니다.”
Atha kho sambahulānaṁ bhikkhūnaṁ rattiyā paccūsasamayaṁ paccuṭṭhitānaṁ maṇḍalamāḷe sannisinnānaṁ sannipatitānaṁ ayaṁ saṅkhiyadhammo udapādi: “acchariyaṁ, āvuso, abbhutaṁ, āvuso, yāvañcidaṁ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sattānaṁ nānādhimuttikatā suppaṭividitā. Ayañhi suppiyo paribbājako anekapariyāyena buddhassa avaṇṇaṁ bhāsati, dhammassa avaṇṇaṁ bhāsati, saṅghassa avaṇṇaṁ bhāsati; suppiyassa pana paribbājakassa antevāsī brahmadatto māṇavo anekapariyāyena buddhassa vaṇṇaṁ bhāsati, dhammassa vaṇṇaṁ bhāsati, saṅghassa vaṇṇaṁ bhāsati. Itihame ubho ācariyantevāsī aññamaññassa ujuvipaccanīkavādā bhagavantaṁ piṭṭhito piṭṭhito anubandhā honti bhikkhusaṅghañcā”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하룻밤 뒤 새벽, 여러 수행자가 회당에서 길 위의 일을 화제로 삼습니다. “벗들이여”가 두 번 나오고, 알고 보는 아라한·정등각자로서 세존이 존재들의 서로 다른 성향을 잘 안다는 찬탄 뒤에 스승과 제자의 대조를 다시 셉니다. 이 대화는 두 평가 가운데 하나를 택하기보다 성향의 다양성을 아는 세존의 통찰에 초점을 옮깁니다. 수행자들이 놀란 까닭은 두 사람의 평판보다 서로 다른 성향을 이미 꿰뚫어 본 세존의 앎에 있습니다.
묵상
서로 정반대인 말을 들을 때 두 사람의 성향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판단의 속도를 어떻게 바꾸나요? 곧바로 옳고 그름을 정하지 않은 채 차이를 알아차릴 여지가 남아 있나요? 수행자들이 놀란 대상이 평판이 아니라 성향을 아는 앎이라는 점은 어떻게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