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일을 낳는 놀이를 삼가다

놀이 자체를 보편적으로 정죄하기보다 믿음의 공양에 의지하는 수행자가 방일에 빠지는 생계의 불일치를 짚습니다.

“믿음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방일을 낳는 놀이에 빠지는 이들이 있다. 여덟·열 줄 판놀이, 공중 놀이, 사방치기, 막대·판·막대공·제비·주사위 놀이, 잎피리·장난감 쟁기·재주넘기·바람개비·장난감 되·수레·활, 글자·생각 맞히기와 소리 흉내가 그것이다. 수행자 고따마는 이를 삼간다.” 수행자들이여, 범부는 이렇게 칭찬하느니라.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aṁ anuyuttā viharanti, seyyathidaṁ—aṭṭhapadaṁ dasapadaṁ ākāsaṁ parihārapathaṁ santikaṁ khalikaṁ ghaṭikaṁ salākahatthaṁ akkhaṁ paṅgacīraṁ vaṅkakaṁ mokkhacikaṁ ciṅgulikaṁ pattāḷhakaṁ rathakaṁ dhanukaṁ akkharikaṁ manesikaṁ yathāvajjaṁ iti vā iti evarūpā jūtappamādaṭṭhānānuyogā paṭivirato samaṇo gotamo’ti—iti vā hi, bhikkhave, puthujjano tathāgatassa vaṇṇaṁ vadamāno vadeyya.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공연을 보는 일 다음에는 스스로 참여하는 방일의 놀이가 열거됩니다. 판과 몸을 쓰는 놀이, 운과 장난감, 글자와 마음을 맞히는 놀이까지 순서대로 들고, 그 묶음 전체를 삼간다고 결론짓습니다. 놀이 자체를 보편적으로 정죄하기보다 믿음의 공양에 의지하는 수행자가 방일에 빠지는 생계의 불일치를 짚습니다. 여러 놀이의 이름을 빠짐없이 든 것은 특정 놀이보다 마음을 흩뜨리고 의무를 잊게 하는 방일의 작동을 겨냥합니다.

묵상

즐거운 놀이가 쉼이 되는 때와 해야 할 일을 잊게 하는 때 사이에는 어떤 신호가 있나요? 시간을 잃었다는 자책보다, 주의가 흩어지기 시작하는 첫 순간이 궁금해질 수 있을까요? 열아홉 놀이를 묶는 말이 즐거움이 아니라 방일이라는 점은 무엇을 가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