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길을 나섰는가

괴로움을 끝내려던 처음 뜻과 명예에서 멈추는 첫 번째 위험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셨다. 데와닷따가 떠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느니라.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데와닷따를 두고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Evaṁ me sutaṁ—ekaṁ samayaṁ bhagavā rājagahe viharati gijjhakūṭe pabbate acirapakkante devadatte. Tatra kho bhagavā devadattaṁ ārabbha bhikkhū āmantesi:

맛지마 니까야 MN 29 심재의 큰 비유경 (Mahāsāropamasutta)

배경

맛지마 니까야 스물아홉 번째 경의 서두입니다. 부처님은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에 머무셨고, 데와닷따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바로 그를 두고 수행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시작하십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을 길게 늘어놓지 않고, 수행의 목적을 잃는 보편적인 과정을 나무에 빗대어 밝히십니다. 이 서두는 장소와 시점과 화자를 분명히 하며, 이어지는 말씀이 부처님의 직접 설법임을 보여 줍니다.

묵상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그 사람만 탓하는 데 오래 머문 적이 있나요? 같은 위험이 내 마음에도 생길 수 있음을 차분히 살핀다면, 남의 이야기가 자신을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 될 수 있을까요?

수행자들이여, 어떤 좋은 집안의 사람이 믿음으로 집에서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간다고 하자. 그는 생각하느니라.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탄식과 몸과 마음의 괴로움과 절망에 잠겨 있다. 이 괴로움의 무더기 전체를 끝낼 길이 보이면 좋겠다.’ 그러나 출가한 뒤 재물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느니라.

“Idha, bhikkhave, ekacco kulaputto saddhā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hoti: ‘otiṇṇomhi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dukkhotiṇṇo dukkhapareto, appeva nāma im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antakiriyā paññāyethā’ti. So evaṁ pabbajito samāno lābhasakkārasilokaṁ abhinibbatteti.

맛지마 니까야 MN 29 심재의 큰 비유경 (Mahāsāropamasutta)

배경

길을 나서는 처음 동기는 괴로움 전체를 끝내려는 절실함입니다.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 슬픔과 아픔과 절망에 둘러싸인 현실을 보고 집 없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수행이 시작되자 재물과 존경과 명성이 따라옵니다. 그것들은 처음 목적이 아니었지만 성취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부처님은 타락한 결과만 말하지 않고 처음의 진실한 마음을 먼저 보여 주어, 목적이 어떻게 조금씩 바뀌는지 살피게 합니다.

묵상

처음 어떤 일을 시작하게 한 가장 절실한 이유를 아직 선명하게 기억하나요? 과정에서 얻은 칭찬과 편안함이 어느새 처음 목적을 대신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되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재물과 존경과 명성에 만족하여 바라던 것을 모두 이루었다고 여기느니라. 그 때문에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며 말하느니라. ‘나는 재물과 존경과 명성이 있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알려지지 않았고 영향력도 없다.’ 그는 거기에 취해 게을러지고, 게으른 채 괴롭게 머무느니라.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ahamasmi lābhasakkārasilokavā, ime panaññe bhikkhū appaññātā appesakkhā’ti. So tena lābhasakkārasilok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ṁ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심재의 큰 비유경 (Mahāsāropamasutta)

배경

명예를 얻은 사실보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문제를 만듭니다. 그는 충분히 이루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다른 수행자를 낮춥니다. 비교가 시작되자 처음 목표였던 괴로움의 끝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재물과 존경과 인기가 성공의 기준이 됩니다. 그 결과 방일해지고 다시 괴로움 속에 머뭅니다. 바깥의 인정은 수행을 돕는 조건일 수 있지만, 자신과 남의 가치를 재는 자가 되는 순간 길을 가로막습니다.

묵상

사람들의 인정이 갑자기 줄어들면 내가 이룬 것까지 사라진 듯 느끼나요? 칭찬과 영향력이 아니라 마음의 자유라는 처음 기준으로 돌아갈 때, 지금의 성공을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을까요?

마치 심재가 필요하여 심재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심재가 든 큰 나무를 만났다고 하자. 그는 심재와 속재목과 나무껍질과 새순을 모두 지나쳐 가지와 잎만 잘라 들고는 심재라고 여기며 떠나느니라.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어느 부분도 구별하지 못해 가지와 잎을 심재로 잘못 알았다고 말할 것이니, 심재로 만들려던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atikkamma tacaṁ atikkamma papaṭikaṁ, sākhāpalāsaṁ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na vatāyaṁ bhavaṁ puriso aññāsi sāraṁ, na aññāsi phegguṁ, na aññāsi tacaṁ, na aññāsi papaṭikaṁ,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atikkamma phegguṁ atikkamma tacaṁ atikkamma papaṭikaṁ, sākhāpalāsaṁ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nānubhavissa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9 심재의 큰 비유경 (Mahāsāropamasutta)

배경

첫 비유에서 명예는 나무의 가지와 잎에 해당합니다. 눈에 잘 띄고 무성하지만 단단한 물건을 만드는 심재의 역할은 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가지와 잎이 쓸모없다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심재라고 착각한 데 있습니다. 수행에서 따라오는 인정도 완전히 버려야 할 악은 아니지만, 괴로움을 끝내는 해탈과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큰 나무 앞에서도 겉부분만 들고 돌아가게 됩니다.

묵상

눈에 잘 보이고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성과를 가장 깊은 성취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지금 손에 든 것이 가지와 잎인지 내가 정말 찾던 심재인지 어떤 분명한 기준으로 구별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