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음식을 먹으면서 ‘그대는 이 담마와 훈련을 모르고 나는 안다. 그대가 어찌 알겠느냐? 그대는 그릇되고 나는 바르다. 나는 맞고 그대는 틀리며, 먼저 할 말을 뒤에 하고 뒤에 할 말을 먼저 했다. 오래 생각한 것이 뒤집혔고 그대의 주장은 논박되어 붙잡혔다. 주장을 구해 내고 가능하면 빠져나와 보라’며 다투는 이들이 있다. 수행자 고따마는 이런 말싸움을 삼간다.” 수행자들이여, 범부는 이렇게 칭찬하느니라.
‘Yathā vā paneke bhonto samaṇabrāhmaṇā saddhādeyyāni bhojanāni bhuñjitvā te evarūpaṁ viggāhikakathaṁ anuyuttā viharanti, seyyathidaṁ—na tv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āsi, ah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āmi, kiṁ tvaṁ imaṁ dhammavinayaṁ ājānissasi, micchā paṭipanno tvamasi, ahamasmi sammā paṭipanno, sahitaṁ me, asahitaṁ te, purevacanīyaṁ pacchā avaca, pacchāvacanīyaṁ pure avaca, adhiciṇṇaṁ te viparāvattaṁ, āropito te vādo, niggahito tvamasi, cara vādappamokkhāya, nibbeṭhehi vā sace pahosīti iti vā iti evarūpāya viggāhikakathāya paṭivirato samaṇo gotamo’ti—iti vā hi, bhikkhave, puthujjano tathāgatassa vaṇṇaṁ vadamāno vadeyya.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잡담 다음에는 교리와 수행을 둘러싼 공격적인 논쟁의 실제 말투가 직접 제시됩니다. 앎과 실천의 우열, 말의 순서, 논박과 궁지 몰기를 차례로 들며 상대를 이기려는 말싸움과 고따마의 삼감을 대조합니다. 내용이 담마라 해도 상대를 굴복시키는 승부로 쓰이면 바른 말과 멀어질 수 있음을 계행의 차원에서 보여 줍니다. 상대의 순서 실수까지 들춰 궁지로 모는 말투는 진리를 밝히기보다 승자를 가리는 데 목적이 옮겨 갔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논쟁에서 내용을 이해하려는 마음과 이기려는 마음은 말의 속도나 몸의 긴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답을 더 세게 밀어붙이기 전, 대화의 목적이 바뀌었는지 묻는 틈이 있을까요? 먼저 할 말과 뒤에 할 말을 뒤집었다는 공격은 진실보다 무엇을 노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