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겁의 기억으로 영원을 주장하다

반복 속에서 달라지는 것은 기억 범위뿐이며, 그 기억을 붙잡아 영원한 실체를 세우는 방식은 동일합니다.

“그는 말한다. ‘자아와 세계는 영원하고 열매 맺지 않으며 산봉우리와 기둥처럼 굳건하다. 존재들은 달리고 윤회하며 죽고 다시 태어나지만 그대로 있다. 왜냐하면 나는 열의·노력·수행·부지런함·바른 주의로 마음을 모아 열·스물·서른·마흔 번의 수축과 팽창에서 두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느낌·수명, 죽음과 재생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So evamāha: ‘sassato attā ca loko ca vañjho kūṭaṭṭho esikaṭṭhāyiṭṭhito; te ca sattā sandhāvanti saṁsaranti cavanti upapajjanti, atthi tveva sassatisamaṁ. Taṁ kissa hetu? Ahañhi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āmi, yathāsamāhite citte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Seyyathidaṁ—dasapi saṁvaṭṭavivaṭṭāni vīsampi saṁvaṭṭavivaṭṭāni tiṁsampi saṁvaṭṭavivaṭṭāni cattālīsampi saṁvaṭṭavivaṭṭāni: “amutr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amutra udapādiṁ; tatrāpāsiṁ evaṁnāmo evaṅgotto evaṁvaṇṇo evamāhāro evaṁsukhadukkhappaṭisaṁvedī evamāyupariyanto, so tato cuto idhūpapanno”ti.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ām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셋째 영원론자는 마흔 겁까지의 기억을 자신의 결론에 붙입니다. 앞 두 주장과 같은 영원 선언, 존재들의 네 움직임, 두 비유, 수행의 다섯 조건을 되풀이하되 기억의 수량만 열에서 마흔 겁으로 바뀝니다. 반복 속에서 달라지는 것은 기억 범위뿐이며, 그 기억을 붙잡아 영원한 실체를 세우는 방식은 동일합니다. 셋째 사례가 더 장대해 보여도 자아와 세계를 영원하다고 선언하는 문장은 앞의 두 사례와 달라지지 않습니다.

묵상

오래 지속된 것이 영원할 것처럼 느껴지는 경험이 있나요? “아주 오래”와 “끝이 없음” 사이를 나누어 생각할 때 마음의 확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볼 수 있을까요? 열·스물·서른·마흔 겁의 기억은 “영원”과 아직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