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도 마지막은 아니다

집중 뒤에 얻은 앎과 봄마저 자만의 근거가 되면 속재목에 머무는 과정

그는 집중에 만족하나 아직 다 이루었다고는 여기지 않느니라. 그는 그것으로 자신을 높이지도 남을 낮추지도 않느니라. 그는 집중의 성취에 취해 게을러지지 않고 부지런히 앎과 봄을 성취하느니라. 그가 그 앎과 봄에 만족하여 모두 이루었다고 여기고 자신을 높이며 남을 낮추어 말하느니라. ‘나는 알고 보며 머물지만 다른 수행자들은 알지도 보지도 못하며 머문다.’ 그는 앎과 봄에 취해 게을러지고 괴롭게 머무느니라.

So tāya samādhisampadāya attamano hoti, no ca kho paripuṇṇasaṅkappo.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attānukkaṁseti, na paraṁ vambheti. So tāya samādhisampadāya na majjati nappamajjati na pamādaṁ āpajjati appamatto samāno ñāṇadassanaṁ ārādheti.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So tena ñāṇadassanena attānukkaṁseti, paraṁ vambheti: ‘ahamasmi jānaṁ passaṁ viharāmi. Ime panaññe bhikkhū ajānaṁ apassaṁ viharantī’ti. So tena ñāṇadassanena majjati pamajjati pamādaṁ āpajjati, pamatto samāno dukkhaṁ viharati.

맛지마 니까야 MN 29 심재의 큰 비유경 (Mahāsāropamasutta)

배경

다음 수행자는 처음 출가의 뜻을 잊지 않고 명예와 계행과 집중을 차례로 얻으면서도 그 어느 것에도 취하지 않습니다. 집중에서도 게을러지지 않고 부지런히 나아가 마침내 앎과 봄을 성취합니다. 그러나 통찰조차 비교의 재료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알고 남은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앎은 무명을 끝내는 빛이 아니라 자만을 비추는 조명이 됩니다. 무엇을 보았는지만큼 그 앎이 집착을 실제로 끝냈는지가 중요합니다.

묵상

무언가를 깊이 이해한 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답답하게 여기거나 낮춘 적이 있나요? 참된 앎이라면 우월감보다 따뜻한 연민과 자유를 키워야 하지 않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심재를 찾는 사람이 큰 나무를 만나 심재를 지나쳐 속재목만 잘라 들고 심재라고 여긴다면, 눈 밝은 이는 그가 나무의 부분을 구별하지 못해 심재로 만들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니라. … 이를 청정한 삶의 속재목을 붙잡고 거기서 멈춘 수행자라 하느니라.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phegguṁ chetvā ādāya pakkameyya ‘sāran’ti maññamāno. Tamenaṁ cakkhumā puriso disvā evaṁ vadeyya: ‘na vatāyaṁ bhavaṁ puriso aññāsi sāraṁ na aññāsi phegguṁ na aññāsi tacaṁ na aññāsi papaṭikaṁ na aññāsi sākhāpalāsaṁ. Tathā hayaṁ bhavaṁ puriso sāratthiko sāragavesī sārapariyesanaṁ caramāno mahato rukkhassa tiṭṭhato sāravato atikkammeva sāraṁ phegguṁ chetvā ādāya pakkanto “sāran”ti maññamāno. Yañcassa sārena sārakaraṇīyaṁ tañcassa atthaṁ nānubhavissatī’ti. … Ayaṁ vuccati, bhikkhave, bhikkhu phegguṁ aggahesi brahmacariyassa; tena ca vosānaṁ āpādi.

맛지마 니까야 MN 29 심재의 큰 비유경 (Mahāsāropamasutta)

배경

앎과 봄은 심재 바로 바깥의 속재목에 비유됩니다. 지금까지의 성취 가운데 가장 깊지만 여전히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앎에 만족해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수행자는 속재목을 심재라고 여기는 사람처럼 거기서 멈춥니다. 계행과 집중을 지나 분명한 통찰을 얻었다는 사실도 집착이 완전히 끝났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이 마지막 자만과 붙잡음을 보지 못하게 할 수 있으므로, 앎이 실제로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묵상

가장 깊고 흔들림 없이 확실해 보이는 이해를 마지막 진리라고 붙들고 있지는 않나요? 그 앎이 자만과 집착을 남기는지, 아니면 정말로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 주는지 결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