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여래는 견해를 그렇게 붙들면 낳을 운명과 내세, 그 너머를 알고도 그 앎을 붙들지 않아 몸소 고요를 아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여래는 느낌의 생김·사라짐·매력·위험·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아 취착 없이 풀려났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직접 실현해 밝히는 깊고 보기·깨닫기 어렵고 고요하며 뛰어나고 추론을 넘고 미묘하여 지혜로운 이가 알 담마이며, 여래를 바르게 칭찬할 일이니라.”
Tayidaṁ, bhikkhave, tathāgato pajānāti: ‘ime diṭṭhiṭṭhānā evaṅgahitā evaṁparāmaṭṭhā evaṅgatikā bhavanti evaṁabhisamparāyā’ti, tañca tathāgato pajānāti, tato ca uttaritaraṁ pajānāti; tañca pajānanaṁ na parāmasati, aparāmasato cassa paccattaññeva nibbuti viditā. Vedanānaṁ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viditvā anupādāvimutto, bhikkhave, tathāgato. Ime kho te, bhikkhave, dhammā gambhīrā duddasā duranubodhā santā paṇītā atakkāvacarā nipuṇā paṇḍitavedanīyā, ye tathāgato sayaṁ abhiññā sacchikatvā pavedeti,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네 영원론을 마친 뒤 첫 번째 여래의 후렴이 견해에 대한 세존의 앎을 밝힙니다. 견해의 결과와 그 너머를 알되 그 앎도 붙들지 않으며, 느낌의 생김·사라짐·매력·위험·벗어남 다섯을 알아 취착 없이 풀려난다는 순서입니다. 견해를 더 강한 견해로 이기기보다 느낌과 집착의 조건을 알아 놓는 길이 여래의 칭찬할 깊은 담마로 제시됩니다. 느낌의 다섯 측면을 안다는 문장이 첫 견해 묶음을 해탈의 관점으로 돌려, 분류의 목적을 분명히 합니다.
묵상
견해의 승패보다 그 견해와 함께 생긴 느낌의 생김·사라짐·매력·위험·벗어남을 본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 지금 붙드는 생각 하나의 감정적 매력을 알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까요? 느낌의 다섯 측면 중 견해의 매력을 놓아 주는 데 가장 직접 닿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