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존재가 이곳에 태어나 한 생만 기억하다

기억의 경계가 보이지 않으면 먼저 만난 범천의 상태를 영원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변화만 확인하는 불균형이 생깁니다.

“수행자들이여, 먼저 온 존재는 더 오래 살고 더 아름다우며 권세가 크고, 뒤에 온 존재들은 더 짧게 살고 덜 아름다우며 권세가 작으니라. 수행자들이여, 그중 하나가 죽어 이곳에 태어나 출가한 뒤 열의·노력·수행·부지런함·바른 주의로 마음을 모아 그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보다 앞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느니라.”

Tatra, bhikkhave, yo so satto paṭhamaṁ upapanno, so dīghāyukataro ca hoti vaṇṇavantataro ca mahesakkhataro ca. Ye pana te sattā pacchā upapannā, te appāyukatarā ca honti dubbaṇṇatarā ca appesakkhatarā ca. Ṭhānaṁ kho panetaṁ, bhikkhave, vijjati, yaṁ aññataro satto tamhā kāyā cavitvā itthattaṁ āgacchati. Itthattaṁ āgato s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samāno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tato paraṁ nānussara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두 집단의 창조 해석 뒤에는 수명·외모·권세의 차이와 인간으로의 재생이 이어집니다. 먼저 온 이는 세 면에서 더 크고 뒤 존재들은 같은 세 면에서 더 작으며, 이곳에 태어나 출가한 한 존재는 바로 전생만 기억하고 그 너머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의 경계가 보이지 않으면 먼저 만난 범천의 상태를 영원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변화만 확인하는 불균형이 생깁니다. 이곳에 다시 태어난 존재가 기억하는 것은 바로 앞 한 생뿐이므로, 기억의 공백이 범천의 영원성을 반박하지 못하게 합니다.

묵상

기억나지 않는 시기를 하나의 설명으로 채우고 싶어지는 때가 있나요? 기억의 끝을 사실의 끝으로 삼지 않고 “여기부터는 모른다”고 남겨 둘 수 있는 느낌은 어떤가요? 수명·아름다움·권세의 차이와 한 생뿐인 기억 가운데 영원하다는 믿음을 가장 크게 부풀리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