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말하느니라. ‘우리를 만든 범천·대범천, 정복자·정복되지 않는 자, 모든 것을 보는 권능자, 주재자·제작자·창조자·으뜸·산출자·지배자, 과거와 미래 존재들의 아버지는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며 언제나 그대로 있다. 그러나 그가 만든 우리는 영원하지 않고 오래가지 못하며 수명이 짧아 죽기 마련이고 이곳에 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자아와 세계가 일부는 영원하다고 세우는 첫째 근거이니라.”
So evamāha: ‘yo kho so bhavaṁ brahmā mahābrahmā abhibhū anabhibhūto aññadatthudaso vasavattī issaro kattā nimmātā seṭṭho sajitā vasī pitā bhūtabhabyānaṁ, yena mayaṁ bhotā brahmunā nimmitā, so nicco dhuvo sassato avipariṇāmadhammo sassatisamaṁ tatheva ṭhassati. Ye pana mayaṁ ahumhā tena bhotā brahmunā nimmitā, te mayaṁ aniccā addhuvā appāyukā cavanadhammā itthattaṁ āgatā’ti. Idaṁ, bhikkhave, paṭhamaṁ ṭhānaṁ, yaṁ āgamma yaṁ ārabbha eke samaṇabrāhmaṇā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한 전생만 기억한 수행자가 그 기억에 맞추어 범천과 자신을 서로 다른 범주로 나눕니다. 범천에게는 영원·항상·불변을, 자신들에게는 무상·불안정·단명·죽음을 각각 붙인 뒤 세존이 첫째 근거라고 분류합니다. 같은 세계에서 나타난 수명 차이와 제한된 기억을 창조자와 피조물의 본질 차이로 굳히는 일부 영원론입니다. 범천의 긴 수명과 자신의 죽음을 영원·무상의 본질 차이로 바꾸면서, 관찰된 차이보다 훨씬 큰 결론이 세워집니다.
묵상
누군가가 나보다 오래 지속하거나 더 강해 보일 때 그 차이를 본성의 차이라고 느끼나요? 정도의 차이가 종류의 차이로 굳는 순간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범천의 영원·항상·불변과 우리의 무상·단명·죽음이라는 대칭에서 기억의 공백은 어느 자리를 차지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