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근거는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놀이에 타락한 신들’이 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그들은 지나치게 오래 웃고 놀며 즐기다가 알아차림을 잃어 그 신들의 무리에서 죽느니라. 그중 하나가 이곳에 태어나 출가하고 열의·노력·수행·부지런함·바른 주의로 마음을 모아 그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보다 앞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느니라.”
Dutiy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Santi, bhikkhave, khiḍḍāpadosikā nāma devā, te ativelaṁ hassakhiḍḍāratidhammasamāpannā viharanti. Tesaṁ ativelaṁ hassakhiḍḍāratidhammasamāpannānaṁ viharataṁ sati sammussati. Satiyā sammosā te devā tamhā kāyā cavanti. Ṭhānaṁ kho panetaṁ, bhikkhave, vijjati yaṁ aññataro satto tamhā kāyā cavitvā itthattaṁ āgacchati. Itthattaṁ āgato s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samāno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tato paraṁ nānussara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일부 영원론의 둘째 근거는 창조 이야기에서 놀이에 타락한 신들의 기억으로 옮겨 갑니다. 지나친 웃음·놀이·즐김이 알아차림 상실의 원인이고 그것이 죽음으로 이어지며, 다시 태어난 수행자는 그 생까지만 기억합니다. 즐거움의 상태와 그 상실을 영원한 집단과 덧없는 집단의 본성 차이로 해석할 준비가 됩니다. 놀이에 빠짐이 알아차림 상실로, 다시 죽음으로 이어지는 조건이 분명하여 다음 견해가 무엇을 오해하는지 대비됩니다.
묵상
즐거움이 깊어질수록 알아차림이 흐려졌던 경험이 있나요? 즐거움을 잘못이라 정하지 않고, 기쁨과 주의가 함께 머무는 때와 갈라지는 때를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웃음과 놀이가 알아차림 상실을 거쳐 죽음에 닿는 연쇄에서 가장 일찍 알아볼 만한 고리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