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타락하지 않은 신만 영원하다는 견해

행동과 결과의 차이를 집단의 영원한 본성 차이로 확대하는 것이 이 근거의 논리입니다.

“그는 말하느니라. ‘놀이에 타락하지 않은 신들은 오래 웃고 놀지 않아 알아차림을 잃지 않고 죽지 않으므로 영원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웃고 놀아 알아차림을 잃고 그곳에서 죽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고 오래가지 못하며 수명이 짧아 죽기 마련이어서 이곳에 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둘째 근거이니라.”

So evamāha: ‘ye kho te bhonto devā na khiḍḍāpadosikā, te na ativelaṁ hassakhiḍḍāratidhammasamāpannā viharanti. Tesaṁ na ativelaṁ hassakhiḍḍāratidhammasamāpannānaṁ viharataṁ sati na sammussati. Satiyā asammosā te devā tamhā kāyā na cavanti; niccā dhuvā sassatā avipariṇāmadhammā sassatisamaṁ tatheva ṭhassanti. Ye pana mayaṁ ahumhā khiḍḍāpadosikā, te mayaṁ ativelaṁ hassakhiḍḍāratidhammasamāpannā viharimhā. Tesaṁ no ativelaṁ hassakhiḍḍāratidhammasamāpannānaṁ viharataṁ sati sammussati. Satiyā sammosā evaṁ mayaṁ tamhā kāyā cutā aniccā addhuvā appāyukā cavanadhammā itthattaṁ āgatā’ti. Idaṁ, bhikkhave, dutiyaṁ ṭhānaṁ, yaṁ āgamma yaṁ ārabbha eke samaṇabrāhmaṇā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한 생만 기억한 존재가 놀이에 타락하지 않은 신들과 자신들을 대조해 둘째 견해를 세웁니다. 저들은 과도한 놀이·알아차림 상실·죽음이 모두 없고, 우리는 세 가지가 모두 있었다는 부정 대칭 뒤 영원과 무상을 나눕니다. 행동과 결과의 차이를 집단의 영원한 본성 차이로 확대하는 것이 이 근거의 논리입니다. “죽지 않았다”는 관찰은 아직 그 생의 끝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과 영원하다는 명제를 구별하지 못한 채 놓입니다.

묵상

어떤 결과를 보고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단정한 적이 있나요? 행동의 조건과 사람의 본성을 따로 볼 때, 익숙한 평가 하나가 조금 느슨해질 수 있을까요? 과도한 놀이·알아차림 상실·죽음이 없다는 세 부정은 “영원하다”는 결론까지 충분히 건너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