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근거는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마음이 사나워진 신들’이 있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그들은 지나치게 오래 서로 노려보다 서로 성내어 몸과 마음이 지치고 그 신들의 무리에서 죽느니라. 그중 하나가 이곳에 태어나 출가하고 열의·노력·수행·부지런함·바른 주의로 마음을 모아 그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보다 앞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느니라.”
Tatiy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Santi, bhikkhave, manopadosikā nāma devā, te a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anti. Te a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antā aññamaññamhi cittāni padūsenti. Te aññamaññaṁ paduṭṭhacittā kilantakāyā kilantacittā. Te devā tamhā kāyā cavanti. Ṭhānaṁ kho panetaṁ, bhikkhave, vijjati yaṁ aññataro satto tamhā kāyā cavitvā itthattaṁ āgacchati. Itthattaṁ āgato s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samāno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tato paraṁ nānussara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셋째 일부 영원론은 놀이가 아니라 서로를 노려보며 생긴 적의에서 시작합니다. 오래 바라봄이 상호 분노를 낳고, 분노가 몸과 마음의 피로를 거쳐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과와 제한된 전생 기억을 보존합니다. 관계 속에서 일어난 소모와 죽음을 다른 신들의 영원성에 대비하는 결론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서로 바라봄에서 분노와 소진이 커져 죽음에 이르는 연쇄는 관계적 조건이 결과를 만든다는 점을 숨기지 않습니다.
묵상
시선이나 적의가 오갈수록 감정이 스스로 커지는 경험은 어떤 몸의 신호로 시작하나요? 상대의 탓을 정하기 전에 소진으로 향하는 첫 고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서로 노려봄에서 분노, 몸과 마음의 소진으로 번지는 동안 관계를 되돌릴 여지는 어느 고리에 남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