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지 않은 신만 영원하다는 견해

관계적 행위의 결과를 서로 다른 존재 본성으로 굳히는 셋째 일부 영원론입니다.

“그는 말하느니라. ‘마음이 사납지 않은 신들은 오래 노려보지 않아 서로 성내지 않고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으며 죽지 않으므로 영원하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 노려보다 성내고 몸과 마음이 지쳐 그곳에서 죽었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고 오래가지 못하며 수명이 짧아 죽기 마련이어서 이곳에 왔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셋째 근거이니라.”

So evamāha: ‘ye kho te bhonto devā na manopadosikā, te nā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anti. Te nā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antā aññamaññamhi cittāni nappadūsenti. Te aññamaññaṁ appaduṭṭhacittā akilantakāyā akilantacittā. Te devā tamhā kāyā na cavanti, niccā dhuvā sassatā avipariṇāmadhammā sassatisamaṁ tatheva ṭhassanti. Ye pana mayaṁ ahumhā manopadosikā, te mayaṁ a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imhā. Te mayaṁ ativelaṁ aññamaññaṁ upanijjhāyantā aññamaññamhi cittāni padūsimhā, te mayaṁ aññamaññaṁ paduṭṭhacittā kilantakāyā kilantacittā. Evaṁ mayaṁ tamhā kāyā cutā aniccā addhuvā appāyukā cavanadhammā itthattaṁ āgatā’ti. Idaṁ, bhikkhave, tatiyaṁ ṭhānaṁ, yaṁ āgamma yaṁ ārabbha eke samaṇabrāhmaṇā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한 생의 기억을 가진 존재가 사나워지지 않은 신들과 자신들을 대조합니다. 저들에게는 노려봄·분노·몸과 마음의 피로·죽음이 없고 우리에게는 모두 있었다는 네 겹 대칭 뒤 영원과 무상을 나눕니다. 관계적 행위의 결과를 서로 다른 존재 본성으로 굳히는 셋째 일부 영원론입니다. 온순한 신들의 생존을 영원성으로, 성낸 신들의 죽음을 본래적 무상으로 나누면서 조건의 차이가 실체의 차이로 바뀝니다.

묵상

갈등을 겪은 사람과 겪지 않은 사람을 서로 다른 본성으로 나누고 싶어질 때가 있나요? 행위와 결과를 보되, 사람 전체를 고정하지 않을 여지는 어디에 남을까요? 노려봄·분노·소진·죽음의 네 차이를 존재의 본성 대신 조건의 차이로 읽으면 두 무리가 어떻게 달리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