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는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어떤 이는 열의·노력·수행·부지런함·바른 주의로 마음을 모아 세계가 위아래로는 유한하고 가로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에 머무느니라. 그는 ‘세계는 유한하면서 무한하다. 유한하기만 하거나 무한하기만 하다는 두 주장은 모두 거짓이다’라고 말하느니라.”
Tatiy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antānantikā antānantaṁ lokassa paññapenti?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uddhamadho antasaññī lokasmiṁ viharati, tiriyaṁ anantasaññī. So evamāha: ‘antavā ca ayaṁ loko ananto ca.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māhaṁsu: “antavā ayaṁ loko parivaṭumo”ti, tesaṁ musā. Yepi te samaṇabrāhmaṇā evamāhaṁsu: “ananto ayaṁ loko apariyanto”ti, tesampi mus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셋째 근거는 앞의 두 경험을 방향에 따라 결합합니다. 위와 아래에는 끝이 있고 가로에는 끝이 없다는 정확한 방향 구분을 두며, 오직 유한하다는 말과 오직 무한하다는 말을 모두 부정합니다. 서로 충돌하는 경험을 방향별로 조정해도, 명상 인식을 세계 자체의 구조로 확정하는 방식은 그대로입니다. 위아래와 가로를 나눈 절충은 두 경험을 조화시키지만, 방향 구분 역시 명상 인식 안에서 세워진 것입니다.
묵상
서로 충돌하는 설명을 절충하면 자동으로 더 참된 답이 된다고 느끼나요? 두 주장을 섞기 전에 각각의 근거가 닿는 범위를 조금 더 천천히 물어볼 수 있을까요? 위아래의 끝과 가로의 무한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배치한 절충은 앞의 두 주장보다 무엇을 더 설명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