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도 무한도 아니라는 넷째 추론

경험에 기대지 않은 추론도 앞의 견해들을 차례로 배제하며 또 하나의 고정된 결론을 만듭니다.

“넷째는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은 논리와 탐구로 자기 견해를 말하느니라. ‘세계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 세계가 유한하다고 말한 수행자와 바라문들은 거짓을 말한다.’”

Catutth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antānantikā antānantaṁ lokassa paññapenti?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takkī hoti vīmaṁsī. So takkapariyāhataṁ vīmaṁsānucaritaṁ sayampaṭibhānaṁ evamāha: ‘nevāyaṁ loko antavā, na panānanto. Ye te samaṇabrāhmaṇā evamāhaṁsu: “antavā ayaṁ loko parivaṭumo”ti, tesaṁ mus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세 가지 명상 인식 뒤 넷째 근거는 논리와 탐구에 따른 부정으로 시작합니다. 유한도 아니고 무한도 아니라는 이중 부정을 세운 뒤, 먼저 유한론자들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부정합니다. 경험에 기대지 않은 추론도 앞의 견해들을 차례로 배제하며 또 하나의 고정된 결론을 만듭니다. 넷째는 유한과 무한을 모두 부정하지만, 말할 수 없다고 멈추지 않고 “둘 다 아니다”라는 새 입장을 확정합니다.

묵상

두 답이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 때 “둘 다 아니다”가 가장 안전한 결론처럼 느껴지나요? 부정이 탐구의 여지를 남기는지, 아니면 또 하나의 확신으로 굳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유한과 무한을 함께 부정한 넷째 논자는 첫째 유한론을 거짓이라 할 때 무엇을 근거로 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