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두려움도 같은 다섯 회피로 끝나다

동기는 거짓말 회피에서 집착 회피로 달라졌지만, 질문을 검토하지 않고 물러나는 언어의 모양은 같습니다.

“그 집착은 내게 고통이 되고 장애가 될 것이다.’ 그는 집착을 두려워하고 싫어하여 ‘이렇다고도, 저렇다고도, 다르다고도, 아니라고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도 말하지 않는다’며 피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둘째 근거이니라.”

Yaṁ mamassa upādānaṁ, so mamassa vighāto. Yo mamassa vighāto, so mamassa antarāyo’ti. Iti so upādānabhayā upādānaparijegucchā nevidaṁ kusalanti byākaroti, na panidaṁ akusalanti byākaroti, tattha tattha pañhaṁ puṭṭho samāno vācāvikkhepaṁ āpajjati amarāvikkhepaṁ: ‘evantipi me no; tathātipi me no; aññathātipi me no; notipi me no; no notipi me no’ti. Idaṁ, bhikkhave, dutiyaṁ ṭhānaṁ, yaṁ āgamma yaṁ ārabbha eke samaṇabrāhmaṇā amarāvikkhepikā tattha tattha pañhaṁ puṭṭhā samānā vācāvikkhepaṁ āpajjanti amarāvikkhepa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둘째 인물의 집착 염려는 고통과 장애라는 결과, 그리고 실제 답변으로 이어집니다. 원인은 집착에 대한 두려움이며, 답변은 첫째와 똑같은 다섯 부정이고, 세존은 이를 둘째 근거로 셉니다. 동기는 거짓말 회피에서 집착 회피로 달라졌지만, 질문을 검토하지 않고 물러나는 언어의 모양은 같습니다. 첫째와 똑같은 다섯 문장이 다시 나와, 고상해 보이는 동기도 실제 답변의 책임을 대신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묵상

말의 이유가 선해 보이면 그 말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는 덜 보게 되나요?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설명 아래 사실 확인을 피한 부분이 없는지 부드럽게 물어볼 수 있을까요? 집착을 피한다는 선한 동기와 다섯 겹 회피가 만날 때, 말하지 않은 사실의 책임은 어디에 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