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회피의 네 근거를 결산하다

거짓·집착·검토의 두려움과 둔함은 달라도, 모두 질문의 사실을 분별하지 않는 같은 회피로 수렴합니다.

“수행자들이여, 끝없이 말을 피하는 이들은 이 네 근거로 질문마다 회피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그렇게 피한다면 네 가운데 하나이며 그 밖에는 없다 … … 여래는 이를 알고, 여래를 바르게 칭찬하려면 그 깊은 담마를 말해야 하느니라.”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amarāvikkhepikā tattha tattha pañhaṁ puṭṭhā samānā vācāvikkhepaṁ āpajjanti amarāvikkhepaṁ catūhi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marāvikkhepikā tattha tattha pañhaṁ puṭṭhā samānā vācāvikkhepaṁ āpajjanti amarāvikkhepaṁ, sabbe te imeheva catūhi vatthūhi, etesaṁ vā aññatarena, natthi ito bahiddhā … pe…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네 회피 동기를 모두 펼친 뒤 범위를 결산하고 여래의 후렴으로 넘어갑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번, 네 근거와 그 밖에는 없다는 한정 뒤에 경문의 일반 생략 두 자리를 같은 순서로 두어 반복되는 여래의 앎을 가리킵니다. 거짓·집착·검토의 두려움과 둔함은 달라도, 모두 질문의 사실을 분별하지 않는 같은 회피로 수렴합니다. 두려움 세 가지와 둔함 하나를 나란히 놓으면, 회피의 겉말보다 그 말을 낳은 서로 다른 조건이 더 잘 보입니다.

묵상

답을 피할 때 거짓말·집착·검토에 대한 두려움과 단순한 모름 가운데 무엇이 더 가까운가요? 이유를 판정하기보다, 지금 말문을 막는 조건 하나를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거짓말·집착·검토의 세 두려움과 어리석음 하나를 나란히 보면 자신의 침묵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