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인식 없는 존재’라는 신들이 있는데 인식이 생기면 그 무리에서 죽느니라. 수행자들이여, 그중 하나가 이곳에 태어나 출가한 뒤 열의·노력·수행·부지런함·바른 주의로 마음을 모아 인식이 생긴 때는 기억하지만 그보다 앞은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느니라.”
Santi, bhikkhave, asaññasattā nāma devā. Saññuppādā ca pana te devā tamhā kāyā cavanti. Ṭhānaṁ kho panetaṁ, bhikkhave, vijjati, yaṁ aññataro satto tamhā kāyā cavitvā itthattaṁ āgacchati. Itthattaṁ āgato samāno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ati. Agārasmā anagāriyaṁ pabbajito samāno ātappamanvāya padhānamanvāya anuyogamanvāya appamādamanvāya sammāmanasikāramanvāya tathārūpaṁ cetosamādhiṁ phusati, yathāsamāhite citte saññuppādaṁ anussarati, tato paraṁ nānussara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우연 발생의 첫 근거는 인식 없는 존재들의 영역과 기억의 한계에서 나옵니다. 인식의 발생이 그 신들의 죽음 조건이고, 인간으로 태어난 수행자는 인식의 발생까지만 기억하며 그 전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이 시작되는 지점을 존재 자체의 시작으로 오인하면 원인 없이 없던 것이 생겼다는 결론이 만들어집니다. 인식이 생긴 순간만 기억하는 수행자는 그 이전의 존재 상태를 직접 부정한 것이 아니라 단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묵상
기억의 첫 장면 이전을 생각할 때 빈칸을 “아무것도 없었다”로 채우고 싶어지나요? 기억되지 않는 시간에 대해 모름을 남겨 두는 것이 불편한지 편안한지 느껴볼 수 있을까요? 인식이 처음 생긴 장면은 기억하면서 인식 없던 존재 상태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비대칭이 무엇을 말해 주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