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은 논리와 탐구로 스스로 떠오른 견해를 말하느니라. ‘자아와 세계는 원인 없이 생겼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우연한 발생을 세우는 둘째 근거이니라.”
Dutiy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adhiccasamuppannikā adhiccasamuppann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takkī hoti vīmaṁsī. So takkapariyāhataṁ vīmaṁsānucaritaṁ sayampaṭibhānaṁ evamāha: ‘adhiccasamuppanno attā ca loko cā’ti. Idaṁ, bhikkhave, dutiyaṁ ṭhānaṁ, yaṁ āgamma yaṁ ārabbha eke samaṇabrāhmaṇā adhiccasamuppannikā adhiccasamuppann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첫째의 제한된 기억과 달리 둘째 근거는 논리와 탐구에서 직접 나옵니다. 자기 생각의 출처를 논리·탐구·스스로 떠오른 견해로 밝히고, 자아와 세계의 무원인 발생이라는 같은 결론 뒤 둘째라고 분류합니다. 경험의 공백뿐 아니라 추론만으로도 원인을 부정하는 고정 견해가 세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둘째는 기억 경험 없이 논리와 탐구만으로 같은 무원인 결론에 도달하여, 서로 다른 길이 같은 취착을 만들 수 있음을 보입니다.
묵상
논리가 매끄러우면 실제 근거가 충분한지 덜 묻게 되나요? 생각의 일관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생각이 확인할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갔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전생 기억 없이 논리와 탐구만으로 우연 발생을 말할 때 그 추론이 기대는 관찰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