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있는 사후 자아의 첫 네 형태

자아의 형태를 네 논리적 가능성으로 완결해 사후의 고정된 실체를 세우는 첫 축입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떤 이들은 열여섯 근거로 죽은 뒤 자아가 온전하며 인식한다고 주장하느니라. 그 열여섯 근거는 무엇인가? ‘자아는 죽은 뒤 물질적이다. 물질적이지 않다. 물질적이면서 물질적이지 않다 …. 물질적이지도 비물질적이지도 않다 ….’”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soḷasa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uddhamāghātanikā 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soḷasahi vatthūhi? ‘Rūpī attā hoti arogo paraṁ maraṇā saññī’ti naṁ paññapenti. ‘Arūpī attā hoti arogo paraṁ maraṇā saññī’ti naṁ paññapenti. ‘Rūpī ca arūpī ca attā hoti …pe…. ‘Nevarūpī nārūpī attā hoti ….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미래 견해의 첫 묶음은 죽은 뒤 인식하는 자아에 관한 열여섯 조합입니다. 첫 네 갈래는 물질·비물질·둘 다·둘 다 아님의 사중 구조이며, 셋째 뒤 공식 생략 하나와 넷째 뒤 일반 생략 하나를 같은 자리에 둡니다. 자아의 형태를 네 논리적 가능성으로 완결해 사후의 고정된 실체를 세우는 첫 축입니다. 물질·비물질·양쪽·어느 쪽도 아님이라는 사중 구조가 자아의 형태를 가능한 모든 조합으로 고정합니다.

묵상

자신을 몸이라고 느끼는 때와 마음이라고 느끼는 때가 번갈아 있나요? 그 경험에서 곧 죽은 뒤에도 남는 자아의 형태를 결론내리지 않고, 지금의 느낌만 살펴볼 수 있을까요? 물질·비물질·둘 다·어느 쪽도 아님이라는 네 자아상 가운데 현재 경험을 사후로 가장 크게 투사한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