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 있는 자아의 열여섯을 결산하다

형태 네·범위 네·인식 네·느낌 네의 열여섯 조합이 사후 인식 자아의 가능한 견해를 망라합니다.

“‘자아는 죽은 뒤 괴로움도 행복도 겪지 않으면서 인식한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열여섯 근거이니라.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인식하는 사후 자아를 말한다면 이 열여섯 가운데 하나이고, 그 밖에는 없다 … … 여래는 이를 알고, 여래를 바르게 칭찬하려면 그 깊은 담마를 말해야 하느니라.”

‘Adukkhamasukhī attā hoti arogo paraṁ maraṇā saññī’ti naṁ paññapenti.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soḷasahi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uddhamāghātanikā 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sabbe te imeheva soḷasahi vatthūhi, etesaṁ vā aññatarena, natthi ito bahiddhā … pe…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마지막 중립 느낌이 열여섯째 조합을 채우고 묶음 전체의 범위를 닫습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이중 부정 뒤 열여섯을 두 번 확인하며, 마지막 두 일반 생략은 반복되는 여래의 앎과 칭찬 후렴을 가리킵니다. 형태 네·범위 네·인식 네·느낌 네의 열여섯 조합이 사후 인식 자아의 가능한 견해를 망라합니다. 조합을 모두 채운 완결성은 사후 자아라는 출발 가정을 입증하지 않으므로, 분류의 촘촘함과 전제의 참됨은 따로 보아야 합니다.

묵상

열여섯 갈래가 모두 채워졌다는 말을 들으면 완전한 설명처럼 느껴지나요? 가능한 답을 망라한 것과 자아가 실제로 존재함을 증명한 것은 다르다는 점이 보이나요? 열여섯이라는 수를 두 번 확인하는 결산은 각 갈래의 공통 전제인 “사후에도 같은 자아”를 검증하기도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