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어떤 이들은 여덟 근거로 죽은 뒤 자아가 온전하지만 인식하지도 비인식하지도 않는다고 하느니라. 그 여덟 근거는 무엇인가? ‘자아는 죽은 뒤 물질적이며 인식하지도 비인식하지도 않는다. 비물질적이며 그러하다 …. 물질적이면서 비물질적이며 그러하다 ….’”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nevasaññīnā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nevasaññīnā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aṭṭha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uddhamāghātanikā nevasaññīnā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nevasaññīnā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aṭṭhahi vatthūhi? ‘Rūpī attā hoti arogo paraṁ maraṇā nevasaññīnāsaññī’ti naṁ paññapenti. ‘Arūpī attā hoti …pe…. ‘Rūpī ca arūpī ca attā hoti ….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다음 여덟은 인식 있음과 없음의 두 극단을 모두 부정한 사후 자아입니다. 첫 세 형태는 물질·비물질·둘 다이고, 비물질 항목 뒤 공식 생략 하나와 둘 다 항목 뒤 일반 생략 하나가 같은 술어를 대신합니다. 미세한 명상 상태를 자아의 영속적 사후 본성으로 규정하면서 다시 형태와 범위의 조합을 만듭니다. 인식도 비인식도 아니라는 미세한 술어가 붙어도, 첫 세 형태는 앞 묶음과 같은 순서로 다시 세워집니다.
묵상
말로 붙잡기 어려운 상태를 “인식도 비인식도 아님”이라고 부를 때 이해가 생기나요, 신비감이 커지나요? 이름의 미세함이 자아라는 전제를 감추지는 않는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 인식도 비인식도 아니라면서 다시 물질·비물질·양쪽을 세우는 첫 세 갈래에는 어떤 긴장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