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인식하지도 비인식하지도 않는 사후 자아의 여덟 근거이니라.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그렇게 말한다면 이 여덟 가운데 하나이고 그 밖에는 없다 … … 여래는 이를 알고, 여래를 바르게 칭찬하려면 그 깊은 담마를 말해야 하느니라.”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uddhamāghātanikā nevasaññīnā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nevasaññīnā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aṭṭhahi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uddhamāghātanikā nevasaññīnāsaññīvādā uddhamāghātanaṁ nevasaññīnāsaññiṁ attānaṁ paññapenti, sabbe te imeheva aṭṭhahi vatthūhi … pe…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세 번째 사후 존속 묶음도 여덟 조합을 세고 반복 후렴으로 닫힙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번, 여덟의 반복과 배타적 범위 뒤 두 일반 생략을 같은 순서로 두었습니다. 인식·비인식의 양쪽을 부정한 미세한 상태마저 붙잡으면 자아의 고정된 사후 견해가 된다는 분류입니다. 세 번째 여덟 갈래의 결산은 인식의 양극을 모두 피한 표현도 견해의 범위 밖으로 나가지 못함을 보여 줍니다.
묵상
긍정과 부정을 모두 피한 말은 집착에서도 벗어난 말처럼 들리나요? 표현이 미세해진 것과 붙드는 마음이 실제로 사라진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인식의 긍정과 부정을 피한 여덟 갈래가 완결될수록 “자아”라는 이름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