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을 누리는 천상의 자아도 끊어진다는 둘째 견해

단멸의 시점을 더 높은 존재 상태로 미뤄도 특정 자아를 실체로 세운 뒤 그 파괴를 궁극으로 보는 구조는 같습니다.

“다른 이는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있다. 존자여, 하지만 그렇게는 이 자아가 바르게 끊어지지 않는다. 존자여, 천상적이고 물질적이며 감각 욕망 영역에서 덩어리 음식을 먹는 다른 자아가 있다. 그대는 모르고 못 보며 나는 알고 본다. 존자여, 그 자아가 몸이 무너져 끊어지고 파괴되어 사후에 없을 때, 존자여, 바르게 끊어진다.’ 이렇게 존재하는 자의 단절·파괴·소멸을 주장한다.”

Tamañño evamāha: ‘atthi kho, bho, eso attā, yaṁ tvaṁ vadesi, neso natthīti vadāmi; no ca kho, bho, ayaṁ attā ettāvatā sammā samucchinno hoti. Atthi kho, bho, añño attā dibbo rūpī kāmāvacaro kabaḷīkārāhārabhakkho. Taṁ tvaṁ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ṁ jānāmi passāmi. So kho, bho, attā yato kāyassa bhed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ṁ maraṇā, ettāvatā kho, bho, ayaṁ attā sammā samucchinn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ucchedaṁ vināsaṁ vibhavaṁ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첫 물질 자아보다 더 미세하다고 여긴 천상 자아를 제시하며 둘째 단멸론이 이어집니다. 앞 자아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되 충분한 단절은 아니라고 하고, 천상·물질·감각 영역·덩어리 음식의 네 특징과 앎의 대조 뒤 같은 소멸 결론을 둡니다. 단멸의 시점을 더 높은 존재 상태로 미뤄도 특정 자아를 실체로 세운 뒤 그 파괴를 궁극으로 보는 구조는 같습니다. 앞 논자를 전면 부정하지 않고 더 높은 자아만 덧붙이기에, 논쟁은 전제를 고치기보다 소멸의 마지막 층을 경쟁하게 됩니다.

묵상

앞 설명을 인정하면서도 “그게 전부는 아니다”라고 더 높은 답을 세우는 흐름이 익숙한가요? 궁극의 지점을 계속 뒤로 미루는 마음에는 어떤 기대가 담겨 있을까요? 천상에서 다섯 감각 욕망을 누리는 둘째 자아는 첫째 육신보다 왜 더 “바른” 단절점으로 여겨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