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는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있다. 존자여, 하지만 그렇게는 이 자아가 바르게 끊어지지 않는다. 존자여, 천상적이고 물질적이며 마음으로 되어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이 온전하고 감각기관이 빠짐없는 다른 자아가 있다. 그대는 모르고 못 보며 나는 알고 본다. 존자여, 그 자아가 몸이 무너져 끊어지고 파괴되어 사후에 없을 때, 존자여, 바르게 끊어진다.’ 이렇게 존재하는 자의 단절·파괴·소멸을 주장한다.”
Tamañño evamāha: ‘atthi kho, bho, eso attā, yaṁ tvaṁ vadesi, neso natthīti vadāmi; no ca kho, bho, ayaṁ attā ettāvatā sammā samucchinno hoti. Atthi kho, bho, añño attā dibbo rūpī manomayo sabbaṅgapaccaṅgī ahīnindriyo. Taṁ tvaṁ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ṁ jānāmi passāmi. So kho, bho, attā yato kāyassa bhed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ṁ maraṇā, ettāvatā kho, bho, ayaṁ attā sammā samucchinn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ucchedaṁ vināsaṁ vibhavaṁ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셋째 단멸론은 음식을 먹는 감각적 천상 자아보다 마음으로 된 자아를 더 근본으로 세웁니다. 천상·물질·마음으로 됨, 모든 큰 부분과 작은 부분의 완전함, 감각기관의 무결함을 밝히고 모르고 봄의 대조 뒤 같은 사후 비존재를 주장합니다. 자아의 재료와 완전성을 바꾸어도 “이 자아의 파괴가 궁극”이라는 단절 논리는 반복됩니다. 마음으로 만들어지고 감각기관이 온전하다는 완전성도, 그 상태를 자아로 간주하는 순간 단멸론의 한 단계가 됩니다.
묵상
더 온전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만나면 그것이 참된 자기라고 느끼고 싶어지나요? 완전함의 경험과 고정된 자아의 존재를 나누어 생각할 여지가 있나요?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팔다리와 감각기관이 온전하다는 두 완전성은 그 존재가 자아라는 근거도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