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는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있다. 존자여, 하지만 그렇게는 이 자아가 바르게 끊어지지 않는다. 존자여, 무한 의식 영역을 완전히 넘어 “아무것도 없다”고 알고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에 든 다른 자아가 있다. 그대는 모르고 못 보며 나는 알고 본다. 존자여, 그 자아가 몸이 무너져 끊어지고 파괴되어 사후에 없을 때, 존자여, 바르게 끊어진다.’ 이렇게 존재하는 자의 단절·파괴·소멸을 주장한다.
Tamañño evamāha: ‘atthi kho, bho, so attā, yaṁ tvaṁ vadesi, neso natthīti vadāmi; no ca kho, bho, ayaṁ attā ettāvatā sammā samucchinno hoti. Atthi kho, bho, añño attā sabbaso viññāṇañcāyatanaṁ samatikkamma “natthi kiñcī”ti ākiñcaññāyatanūpago. Taṁ tvaṁ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ṁ jānāmi passāmi. So kho, bho, attā yato kāyassa bhed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ṁ maraṇā, ettāvatā kho, bho, ayaṁ attā sammā samucchinn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ucchedaṁ vināsaṁ vibhavaṁ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여섯째 단멸론은 무한 의식을 넘어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자아로 삼습니다. 앞 영역을 완전히 넘음,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 새 영역에 듦, 모르고 앎의 대조와 소멸 결론이 한 흐름입니다. 대상이 없는 듯한 미세한 경험조차 자아라는 관념으로 붙잡으면 또 하나의 단멸 견해가 됩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조차 하나의 경험 영역인데, 논자는 그것을 다른 자아의 근거로 다시 붙잡습니다.
묵상
비어 있음이나 아무것도 없음이 특별하게 느껴질 때 그것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만들고 싶어지나요? 대상의 부재와 자아 관념의 부재가 같은지 조용히 물어볼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 영역을 자아로 삼는 순간, 없음이라는 경험과 존재하는 자아가 어떻게 함께 놓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