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는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있다. 존자여, 하지만 그렇게는 이 자아가 바르게 끊어지지 않는다. 존자여,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 “이는 고요하고 뛰어나다”고 알고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든 다른 자아가 있다. 그대는 모르고 못 보며 나는 알고 본다. 존자여, 그 자아가 몸이 무너져 끊어지고 파괴되어 사후에 없을 때, 존자여, 바르게 끊어진다.’ 이렇게 존재하는 자의 단절·파괴·소멸을 주장한다.
Tamañño evamāha: ‘atthi kho, bho, eso attā, yaṁ tvaṁ vadesi, neso natthīti vadāmi; no ca kho, bho, ayaṁ attā ettāvatā sammā samucchinno hoti. Atthi kho, bho, añño attā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santametaṁ paṇītametan”ti nevasaññānāsaññāyatanūpago. Taṁ tvaṁ na jānāsi na passasi. Tamahaṁ jānāmi passāmi. So kho, bho, attā yato kāyassa bhedā ucchijjati vinassati, na hoti paraṁ maraṇā, ettāvatā kho, bho, ayaṁ attā sammā samucchinn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ucchedaṁ vināsaṁ vibhavaṁ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일곱째 단멸론은 가장 미세한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을 궁극 자아로 세웁니다. 앞 영역을 넘고 “고요하고 뛰어나다”는 평가를 거쳐 새 영역에 들며, 앎의 우월 선언과 동일한 파괴·사후 비존재 결론으로 닫습니다. 일곱 단계 모두 다른 자아를 세우지만 어느 경우도 자아 관념 자체를 놓지 않은 채 그 소멸을 궁극이라 부릅니다. 가장 미세한 영역까지 올라간 일곱째도 “그 자아가 파괴된다”는 동일한 결론으로 돌아와 단멸론의 구조를 완성합니다.
묵상
가장 고요하고 뛰어난 상태를 마지막 답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상태의 높고 낮음을 존중하면서도, 모든 상태가 조건 따라 변할 가능성을 함께 품을 수 있을까요?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가장 미세한 영역에서조차 파괴될 자아를 세우는 역설은 어떻게 들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