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단멸론을 결산하다

어디에서 단절을 상정하든 존재하는 자아라는 전제를 붙잡는 일곱 방식 안에 속함을 보여 줍니다.

“수행자들이여, 존재하는 자의 단절·파괴·소멸을 말하는 근거는 이 일곱뿐이니라.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그렇게 말한다면 일곱 가운데 하나이고 그 밖에는 없다 … … 여래는 이를 알고, 여래를 바르게 칭찬하려면 그 깊은 담마를 말해야 하느니라.”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ṁ vināsaṁ vibhavaṁ paññapenti sattahi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ucchedavādā sato sattassa ucchedaṁ vināsaṁ vibhavaṁ paññapenti, sabbe te imeheva sattahi vatthūhi … pe…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몸에서 가장 미세한 명상 영역까지 일곱 단멸 견해를 펼친 뒤 범위를 닫습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번, 일곱의 반복과 그 밖에는 없다는 결론, 두 일반 생략을 차례로 두어 반복되는 여래의 앎을 표시합니다. 어디에서 단절을 상정하든 존재하는 자아라는 전제를 붙잡는 일곱 방식 안에 속함을 보여 줍니다. 몸·천상 몸·마음 몸·네 무색 영역이라는 일곱 지점은 자아를 어디에 두느냐만 달리한 같은 단절 주장을 이룹니다.

묵상

일곱 자아가 서로 달라도 모두 “존재하는 무엇이 끊어진다”고 전제한다는 점이 보이나요? 자신이 자아라고 가장 자연스럽게 여기는 자리는 어디인지 궁금해해도 괜찮아요? 육신·천상 몸·마음 몸·네 무색 영역이라는 일곱 자리 중 단멸이라는 결론 없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