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들이여, 어떤 이들은 다섯 근거로 존재하는 자가 지금 여기서 최상의 열반에 든다고 하느니라. 그 다섯 근거는 무엇인가? 수행자들이여, 첫째는 ‘존자여, 자아가 다섯 감각 욕망을 충분히 갖추고 누리며 즐길 때, 존자여, 지금 여기서 최상의 열반에 이른다.’ 이렇게 어떤 이는 지금 여기의 최상 열반을 주장하느니라.”
Santi, bhikkhave, eke samaṇabrāhmaṇā diṭṭhadhammanibbānavādā sato sattassa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ññapenti pañcahi vatthūhi. Te ca bhonto samaṇabrāhmaṇā kimāgamma kimārabbha diṭṭhadhammanibbānavādā sato sattassa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ññapenti pañcahi vatthūhi? Idha, bhikkhave, ekacco samaṇo vā brāhmaṇo vā evaṁvādī hoti evaṁdiṭṭhi: ‘yato kho, bho, ayaṁ attā pañcahi kāmaguṇehi samappito samaṅgībhūto paricāreti, ettāvatā kho, bho, ayaṁ attā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tt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배경
단멸론 다음에는 현재 경험 가운데 하나를 최상의 열반이라 부르는 다섯 견해가 옵니다. 첫째는 대상의 수를 다섯 감각 욕망으로 명시하고, 그것을 갖춤·충족·즐김의 세 동작과 지금 여기의 최상 열반을 연결합니다. 경은 감각적 쾌락을 열반으로 승인하지 않고, 다섯 경쟁 견해 가운데 첫째로 분류합니다. 첫 견해는 감각 욕망을 충분히 갖추고 누리는 바로 그때를 최상 열반이라 하여 쾌락과 해탈을 동일시합니다.
묵상
원하는 것을 충분히 누리는 순간 “이보다 나을 수 없다”고 느껴본 적이 있나요? 만족의 강도와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남이 같은 것인지 질문해 볼 수 있을까요? 다섯 감각 욕망을 갖추어 누리는 상태가 “지금 여기 최상”이라는 첫 근거에서 변화 가능성은 어디에 놓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