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욕망 대신 첫 번째 선정을 열반이라 여기다

쾌락보다 깊은 상태를 보았어도 그 상태를 자아의 최종 열반으로 고정하는 견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다른 이는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자아는 있다. 존자여, 하지만 그렇게는 이 자아가 지금 여기의 최상 열반에 이르지 않는다. 왜인가? 존자여, 감각 욕망은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여 슬픔·비탄·아픔·근심·절망을 낳는다. 존자여, 이 자아가 욕망과 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 생각을 놓고 이어 가며, 벗어남에서 난 희열과 행복의 첫 선정에 들 때, 존자여, 지금 여기서 최상의 열반에 이른다.’ 이렇게 지금 여기의 최상 열반을 주장한다.”

Tamañño evamāha: ‘atthi kho, bho, eso attā, yaṁ tvaṁ vadesi, neso natthīti vadāmi; no ca kho, bho, ayaṁ attā ettāvatā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tto hoti. Taṁ kissa hetu? Kāmā hi, bho, aniccā dukkhā vipariṇāmadhammā, tesaṁ vipariṇāmaññathābhāvā uppajjanti sokaparidevadukkhadomanassupāyāsā. Yato kho, bho, ayaṁ attā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ettāvatā kho, bho, ayaṁ attā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tto hotī’ti. Ittheke sato sattassa paramadiṭṭhadhammanibbānaṁ paññapenti.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둘째 견해는 감각적 즐거움의 결함을 지적하고 첫 번째 선정으로 기준을 옮깁니다. 감각 욕망의 무상·괴로움·변화와 다섯 고통의 결과를 밝힌 뒤, 두 벗어남·생각 놓기와 이어 감·희열·행복을 갖춘 첫 선정을 제시합니다. 쾌락보다 깊은 상태를 보았어도 그 상태를 자아의 최종 열반으로 고정하는 견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감각 욕망의 변화가 다섯 고통을 낳는다는 비판은 분명하지만, 논자는 첫 선정이라는 새 상태를 최종 자아로 고정합니다.

묵상

거친 즐거움의 위험을 본 뒤 더 고요한 기쁨을 최종 답으로 삼고 싶어지나요? 이전 상태의 한계를 안 것과 다음 상태가 궁극임을 안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욕망의 변화에서 생기는 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과 첫 선정의 네 특징을 맞대면 논자의 선택이 이해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