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관한 마흔네 근거를 결산하다

서로 반대되는 존속과 소멸의 주장도 경험한 상태를 자아로 붙잡는 한 같은 분류 안에 놓입니다.

“수행자들이여, 미래의 끝을 헤아리는 이들의 견해는 이 마흔네 근거이니라.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미래에 관해 말한다면 마흔네 가운데 하나이고 그 밖에는 없다 … … 여래는 이를 알고, 여래를 바르게 칭찬하려면 그 깊은 담마를 말해야 하느니라.”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aparantakappikā aparantānudiṭṭhino aparantaṁ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catucattārīsāya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aparantakappikā aparantānudiṭṭhino aparantaṁ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sabbe te imeheva catucattārīsāya vatthūhi … pe… yehi tathāgatassa yathābhuccaṁ vaṇṇaṁ sammā vadamānā vadeyyu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사후 존속 세 묶음, 단멸론, 지금 여기 열반론을 마친 뒤 미래 견해 전체를 결산합니다. 열여섯·여덟·여덟·일곱·다섯을 합한 마흔넷을 앞뒤로 확인하고, 두 일반 생략으로 반복 후렴을 잇습니다. 서로 반대되는 존속과 소멸의 주장도 경험한 상태를 자아로 붙잡는 한 같은 분류 안에 놓입니다. 영원히 남는 자아와 완전히 사라지는 자아처럼 정반대 결론도 “미래의 나”를 먼저 세우는 한 방식에서 만난다는 점을 합계가 보여 줍니다.

묵상

서로 반대인 영원한 존속과 완전한 소멸이 한 분류 안에 놓이는 까닭이 무엇처럼 보이나요? 결론보다 자아를 먼저 세우는 공통점을 따라가 볼 수 있을까요? 열여섯·여덟·여덟·일곱·다섯의 합계 마흔넷에서 서로 반대되는 존속과 단절을 묶는 한 전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