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미래의 예순두 견해를 결산하다

경의 제목인 그물은 견해의 내용이 많다는 뜻뿐 아니라 가능한 조합을 빠짐없이 포괄한다는 데서 선명해집니다.

“수행자들이여, 과거의 시작과 미래의 끝을 헤아리는 견해는 모두 이 예순두 근거이니라. 수행자들이여, 누구든 과거나 미래에 관해 그런 견해를 말한다면 이 예순두 가운데 하나에 의지하며, 그 밖에는 없느니라.”

Imehi kho te, bhikkhave, samaṇabrāhmaṇā pubbantakappikā ca aparantakappikā ca pubbantāparantakappikā ca pubbantāparantānudiṭṭhino pubbantāparantaṁ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dvāsaṭṭhiyā vatthūhi. Ye hi keci, bhikkhave, samaṇā vā brāhmaṇā vā pubbantakappikā vā aparantakappikā vā pubbantāparantakappikā vā pubbantāparantānudiṭṭhino pubbantāparantaṁ ārabbha anekavihitāni adhimuttipadāni abhivadanti, sabbe te imeheva dvāsaṭṭhiyā vatthūhi, etesaṁ vā aññatarena; natthi ito bahiddh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열여덟 과거 견해와 마흔네 미래 견해가 하나의 예순두 구조로 합쳐집니다. “수행자들이여” 두 번과 예순두의 반복, 과거·미래·양쪽의 세 범위, 그 밖에는 없다는 결론을 정확히 둡니다. 경의 제목인 그물은 견해의 내용이 많다는 뜻뿐 아니라 가능한 조합을 빠짐없이 포괄한다는 데서 선명해집니다. 과거의 열여덟과 미래의 마흔넷을 합한 예순둘은 자아와 세계에 관한 가능한 견해의 그물을 완성합니다. 예순두 전체를 닫은 다음에도 여래의 후렴은 앞에서 읽은 온전한 내용 그대로 이어져, 가능한 모든 견해보다 그것을 붙들지 않는 앎을 마지막 기준으로 세웁니다.

묵상

예순두라는 완결된 수 앞에서 모든 답이 이미 그물 안에 있다는 말은 어떻게 다가오나요? 새로운 답을 더 만들기보다 답을 붙드는 조건을 살펴보는 방향이 느껴지나요? 과거 열여덟과 미래 마흔넷이 정확히 예순둘로 닫힐 때 그물의 매듭은 답의 내용일까요, 답을 붙드는 방식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