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다섯 견해는 접촉을 조건으로 한다

견해를 추상적 생각으로만 보지 않고 감각 경험과 마음이 만나는 접촉에서 조건 지어진 사건으로 돌려봅니다.

“수행자들이여, 영원론 네 근거도 접촉을 조건으로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일부 영원론 네 근거도 접촉을 조건으로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유한·무한론 네 근거도 접촉을 조건으로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끝없는 회피 네 근거도 접촉을 조건으로 하느니라. 수행자들이여, 우연 발생론 두 근거도 접촉을 조건으로 하느니라.”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sassatavādā 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tadapi phassapaccayā.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ekaccasassatikā ekaccaasassatikā ekaccaṁ sassataṁ ekaccaṁ asassat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tadapi phassapaccayā.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antānantikā antānantaṁ lokassa paññapenti catūhi vatthūhi, tadapi phassapaccayā.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amarāvikkhepikā tattha tattha pañhaṁ puṭṭhā samānā vācāvikkhepaṁ āpajjanti amarāvikkhepaṁ catūhi vatthūhi, tadapi phassapaccayā. Tatra, bhikkhave, ye te samaṇabrāhmaṇā adhiccasamuppannikā adhiccasamuppannaṁ attānañca lokañca paññapenti dvīhi vatthūhi, tadapi phassapaccayā.

디가 니까야 DN 1 범망경 (Brahmajālasutta)

배경

갈애에 휩쓸린 몸부림이라는 판정 뒤에는 그 모든 느낌의 조건이 접촉이라고 밝히는 반복이 옵니다. 과거 견해의 네·네·네·네·둘을 같은 순서로 세고, 다섯 항목 각각에 “수행자들이여”와 “접촉을 조건으로 한다”를 빠짐없이 반복합니다. 견해를 추상적 생각으로만 보지 않고 감각 경험과 마음이 만나는 접촉에서 조건 지어진 사건으로 돌려봅니다. 영원한 우주를 말하는 생각조차 지금 일어난 접촉의 산물이라면, 분석의 초점은 먼 과거에서 현재 조건으로 이동합니다.

묵상

영원이나 세계의 끝에 관한 생각도 보고 듣고 생각하는 접촉에서 시작했다는 말이 실감나나요? 한 생각이 막 생기는 순간 어떤 접촉이 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영원·일부 영원·유한과 무한·회피·우연이라는 다섯 과거 묶음이 각각 기대는 접촉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