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고요해져
내면이 맑고 마음이 하나가 되며,
그 두 작용 없이 집중에서 난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두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그는 그 선정의 현상을 하나씩 구별했느니라.
내면의 맑음, 희열, 행복, 마음의 통일,
접촉, 느낌, 인식, 의도, 마음, 정진, 결심,
노력, 알아차림, 평정, 주의 기울임이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sāriputto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Ye ca dutiye jhāne dhammā—ajjhattaṁ sampasādo ca pīti ca sukhañca cittekaggatā ca, phasso vedanā saññā cetanā cittaṁ chando adhimokkho vīriyaṁ sati upekkhā manasikāro—tyāssa dhammā anupadavavatthitā honti. …
맛지마 니까야 MN 111 하나씩 살피는 경 (Anupadasutta) 배경
두 번째 선정에서는 생각을 일으키고 이어 가는 작용이 고요해지고, 내면의 맑음과 하나 된 마음, 삼매에서 난 기쁨과 행복이 두드러집니다. 사리뿟따는 이 상태 역시 접촉부터 주의 기울임까지 하나씩 구별합니다. 그는 각 현상이 생기고 머물고 사라지는 때를 알며, 즐거운 현상에 끌리거나 사라짐을 두려워해 물러나지 않습니다. 이 고요에도 기대거나 묶이지 않고 마음을 풀어 놓은 채, 지금보다 더 높은 벗어남이 있음을 거듭 닦아 확인합니다.
묵상
생각이 잦아든 맑은 상태를 만나면 그 고요와 나를 동일시하나요? 고요를 구성하는 기쁨과 느낌과 인식도 하나씩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본다면, 그 상태에서 무엇을 붙잡지 않고 더 높은 자유를 향할 수 있을까요?
“또한 희열이 빛바래자 평정하게 머물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했느니라.
성스러운 이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그는 행복, 알아차림, 분명한 앎, 마음의 통일,
접촉, 느낌, 인식, 의도, 마음, 정진, 결심,
노력, 알아차림, 평정, 주의 기울임을
하나씩 구별했고,
그 현상들이 생겨나고 머물고 사라질 때
분명히 알았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sāriputto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Ye ca tatiye jhāne dhammā—sukhañca sati ca sampajaññañca cittekaggatā ca, phasso vedanā saññā cetanā cittaṁ chando adhimokkho vīriyaṁ sati upekkhā manasikāro—tyāssa dhammā anupadavavatthitā honti, tyāssa dhammā vidit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ṁ gacchanti. …
맛지마 니까야 MN 111 하나씩 살피는 경 (Anupadasutta) 배경
세 번째 선정에서는 들뜬 기쁨이 잦아들고 평온과 알아차림, 분명한 앎, 몸으로 느끼는 잔잔한 행복이 남습니다. 사리뿟따는 이 더 섬세한 상태에서도 행복과 마음의 통일, 접촉과 느낌 등 모든 요소를 분리해 봅니다. 각 현상이 생겨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때도 분명히 압니다. 그래서 잔잔한 행복조차 붙들거나 피하지 않고, 그것에 기대거나 묶이지 않은 채 마음을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이 상태를 넘어서는 더 높은 벗어남이 있음을 거듭 닦아 확인합니다.
묵상
큰 기쁨이 가라앉은 뒤의 잔잔함을 심심함으로 오해한 적이 있나요? 자극은 줄었지만 알아차림과 평온이 더 선명한 행복을 경험한다면 무엇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게 되며, 오늘 어느 잔잔한 순간에서 확인할 수 있을까요?
“또한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이전의 기쁨과 슬픔도 사라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알아차림이 맑아진
네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그는 평온,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고요하여 애쓰지 않는 마음, 맑은 알아차림, 마음의 통일,
접촉, 느낌, 인식, 의도, 마음, 정진, 결심,
노력, 알아차림, 평온, 주의 기울임을
하나씩 구별했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sāriputto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Ye ca catutthe jhāne dhammā—upekkhā adukkhamasukhā vedanā passaddhattā cetaso anābhogo satipārisuddhi cittekaggatā ca, phasso vedanā saññā cetanā cittaṁ chando adhimokkho vīriyaṁ sati upekkhā manasikāro—tyāssa dhammā anupadavavatthitā honti. …
맛지마 니까야 MN 111 하나씩 살피는 경 (Anupadasutta) 배경
네 번째 선정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 기쁨과 슬픔의 양극이 가라앉고 평온으로 맑아진 알아차림이 남습니다. 애써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고요와 중립적 느낌까지 사리뿟따는 하나씩 구별합니다. 각각의 현상이 없다가 생기고 생긴 뒤 사라짐을 알기에, 맑은 평온도 영원한 피난처로 붙들지 않습니다. 그는 끌리거나 밀려나지 않고 독립된 마음으로 머물며, 이보다 더 높은 벗어남이 있음을 거듭 닦아 확인합니다.
묵상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를 무감각이나 공허로만 생각하나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힘이 잠잠해져 알아차림이 맑아진 평온이라면 그 자리에서 무엇을 더 정확히 볼 수 있으며, 무감각과 평온을 무엇으로 구별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