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과 느낌의 소멸

인식도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서 나와 현상을 살피고,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서 번뇌를 끝냅니다.

“또한 아무것도 없음의 영역을 완전히 넘어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그는 알아차리며 거기서 나왔느니라. 나온 뒤 지나가고 소멸하고 변한 그곳의 현상을 관찰했느니라. ‘이 현상들은 없다가 생겨나고, 생겨난 뒤에는 사라지는구나.’ 그는 붙지도 물러나지도 않고, 의지하거나 묶이지도 않았으며, 풀려나 떨어져 경계 없는 마음으로 머물렀느니라. ‘더 높은 벗어남이 있다’고 알고 거듭 닦아 있음을 확인했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sāriputto sabbaso ākiñc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upasampajja viharati.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ati.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itvā ye dhamm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te dhamme samanupassati: ‘evaṁ kirame dhammā ahutvā sambhonti, hutvā paṭiventī’ti. So tesu dhammesu anupāyo anapāyo anissito appaṭibaddho vippamutto visaṁyutto vimariyādīkatena cetasā viharati. So ‘atthi uttari nissaraṇan’ti pajānāti. Tabbahulīkārā atthitvevassa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1 하나씩 살피는 경 (Anupadasutta)

배경

인식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기 어려울 만큼 미세한 경지에서는 머무는 동안 현상을 하나씩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는 알아차리며 그 성취에서 나온 뒤, 이미 지나가고 소멸하고 변한 현상을 돌아봅니다. 그래도 결론은 같습니다. 없던 것이 생겼다가 사라졌으며, 그 현상에도 달라붙거나 피하지 않고 더 높은 벗어남을 봅니다. 관찰 방식은 경지의 미세함에 맞게 달라지지만 생멸과 비집착이라는 통찰은 이어집니다.

묵상

경험하는 동안에는 너무 미세하거나 강해서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지나간 뒤 분명히 본 일이 있나요? 뒤돌아보며 그 상태의 발생과 소멸을 구별하는 지혜도 현재의 어떤 집착을 푸는 실제 수행이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인식도 아니고 비인식도 아닌 영역을 완전히 넘어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어 머물렀느니라. 지혜로 보아 번뇌가 다했느니라. 그는 알아차리며 거기서 나와 지나가고 소멸하고 변한 현상을 관찰했느니라. ‘이 현상들은 없다가 생겨나고, 생겨난 뒤에는 사라지는구나.’ 그는 붙지도 물러나지도 않고, 의지하거나 묶이지도 않았으며, 풀려나 떨어져 경계 없는 마음으로 머물렀느니라. ‘더 높은 벗어남은 없다’고 알고, 거듭 닦아 이를 확인했느니라.”

Puna caparaṁ, bhikkhave, sāriputto sabbaso nevasaññānāsaññāyatanaṁ samatikkamma saññāvedayitanirodhaṁ upasampajja viharati. Paññāya cassa disvā āsavā parikkhīṇā honti.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ati. So tāya samāpattiyā sato vuṭṭhahitvā ye dhammā atītā niruddhā vipariṇatā te dhamme samanupassati: ‘evaṁ kirame dhammā ahutvā sambhonti, hutvā paṭiventī’ti. So tesu dhammesu anupāyo anapāyo anissito appaṭibaddho vippamutto visaṁyutto vimariyādīkatena cetasā viharati. So ‘natthi uttari nissaraṇan’ti pajānāti. Tabbahulīkārā natthi tvevassa hoti.

맛지마 니까야 MN 111 하나씩 살피는 경 (Anupadasutta)

배경

마침내 사리뿟따는 인식과 느낌의 소멸에 들고, 지혜로 보아 번뇌가 완전히 다합니다. 그 성취에서 나온 뒤에도 지나간 현상의 생멸을 살피고 어디에도 달라붙지 않습니다. 앞선 모든 단계에서는 더 높은 벗어남이 있다고 알았지만, 여기서는 더 높은 벗어남이 없음을 확인합니다. 깊은 상태를 얻었다는 선언만으로 끝내지 않고 번뇌의 소멸과 비집착, 더 갈 곳이 없다는 지혜가 함께 갖추어져 완전한 자유를 이룹니다.

묵상

더 나은 상태를 끝없이 찾아다니는 마음은 무엇을 놓치고 있나요? 얻을 것이 더 없어서가 아니라 붙드는 번뇌가 다해 더 벗어날 곳이 없다는 자유는 어떻게 느껴지며, 지금의 추구와 무엇이 다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