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장애를 넘어 마음을 모으기

윤리·자족·감각 절제·분명한 앎을 바탕으로 한적한 곳에 머물며 다섯 장애를 버리고 네 단계의 선정을 닦습니다.

“이 고귀한 계행·자족·감각 절제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춘 그는 숲·나무 밑·산·골짜기·산의 동굴·무덤· 인적 드문 숲·트인 곳·짚무더기 같은 한적한 거처에 머무느니라. 탁발을 마치고 식사한 뒤에는 가부좌를 하고 몸을 바로 세우며 앞에 알아차림을 세워 앉느니라.”

So iminā ca ariyena sīlakkhandhena samannāgato, imāya ca ariyāya santuṭṭhiyā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indriyasaṁvarena samannāgato, iminā ca ariyena satisampajaññena samannāgato vivittaṁ senāsanaṁ bhajati araññaṁ rukkhamūlaṁ pabbataṁ kandaraṁ giriguhaṁ susānaṁ vanapatthaṁ abbhokāsaṁ palālapuñjaṁ. So pacchābhattaṁ piṇḍapātapaṭikkanto nisīdati pallaṅkaṁ ābhujitvā, ujuṁ kāyaṁ paṇidhāya, parimukhaṁ satiṁ upaṭṭhapetvā.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한적한 명상은 준비 없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먼저 윤리와 자족, 감각 절제,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갖춥니다. 그 바탕을 가진 뒤에 숲·나무 밑·산·골짜기·산의 동굴·무덤·인적 드문 숲·트인 곳·짚무더기라는 여러 한적한 장소를 찾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가부좌를 하고 몸을 바로 세운 뒤, 알아차림을 현재에 세웁니다. 환경·자세·마음의 준비가 하나의 연속된 장면입니다.

묵상

마음을 고요히 하고 싶으면서도 윤리·자족·감각 절제·일상의 분명한 앎이라는 준비를 서로 따로 보지는 않나요? 현재의 나에게 한적한 자리와 곧은 몸과 선명한 알아차림을 마련하려면 먼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요?

“그는 세상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탐욕 없는 마음으로 탐욕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악의와 적의를 버리고 모든 생명을 연민하며 악의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혼침과 졸음을 버리고 빛을 인식하며 알아차리고 분명히 알고, 들뜨고 후회하는 마음을 버리어 내면이 고요한 마음으로 각각 깨끗이 하느니라. 의심을 버리고 의심을 건너서 유익한 상태에 대해 망설임 없이 의심에서 마음을 깨끗이 하느니라.”

So abhijjhaṁ loke pahāya vigatābhijjhena cetasā viharati, abhijjhāya cittaṁ parisodheti. Byāpādapadosaṁ pahāya abyāpannacitto viharati, sabbapāṇabhūtahitānukampī byāpādapadosā cittaṁ parisodheti. Thinamiddhaṁ pahāya vigatathinamiddho viharati ālokasaññī sato sampajāno, thinamiddhā cittaṁ parisodheti. Uddhaccakukkuccaṁ pahāya anuddhato viharati, ajjhattaṁ vūpasantacitto uddhaccakukkuccā cittaṁ parisodheti. Vicikicchaṁ pahāya tiṇṇavicikiccho viharati akathaṅkathī kusalesu dhammesu, vicikicchāya cittaṁ parisodhe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다섯 장애는 단순히 버릴 대상의 목록이 아니라, 버린 뒤 어떤 마음으로 머무는지까지 설명됩니다. 탐욕은 탐욕 없는 마음으로, 악의는 모든 생명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닦습니다. 혼침과 졸음을 버린 때는 빛을 인식하고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유지합니다. 들뜨고 후회하는 마음을 버린 때는 내면이 고요하고, 의심을 건너는 것은 이로운 것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묵상

다섯 장애 가운데 지금 내 마음을 가장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밀어내는 데만 힘쓰지 않고, 탐욕 없음·연민·밝음·고요·확신 가운데 무엇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요?

“지혜를 약하게 하는 마음의 오염인 이 다섯 장애를 버린 그는 감각적 즐거움과 해로운 상태에서 멀리 떠나, 마음을 두고 이어 가며 한적함에서 나는 희열과 행복이 있는 첫 번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이것을 여래의 발자국, 여래가 다닌 흔적, 여래의 상아 자국이라 부르느니라. 그러나 고귀한 제자는 아직 세존·가르침·승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느니라.”

So ime pañca nīvaraṇe pahāya cetaso upakkilese paññāya dubbalīkaraṇe, vivicceva kāmehi vivicca akusalehi dhammehi savitakkaṁ savicāraṁ vivekajaṁ pītisukhaṁ paṭham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vuccati, brāhmaṇa, tathāgatapadaṁ itipi, tathāgatanisevitaṁ itipi, tathāgatārañjitaṁ itipi. Na tveva tāva ariyasāvako niṭṭhaṁ gaccha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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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장애를 지혜를 약하게 만드는 마음의 오염이라고 요약한 뒤, 첫째 선정에 듭니다. 이 상태는 감각적 즐거움과 해로운 것에서 멀리 떠나고, 마음을 대상에 두고 계속 연결하며, 한적함에서 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습니다. 이는 여래의 발자국·다닌 흔적·상아 자국이라고 불릴 만한 증거입니다. 하지만 “아직 결론 내리지 않는다”는 부정이 분명합니다. 깊은 평안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세 가지 확신이 아직 완성되지 않습니다.

묵상

깊은 집중과 기쁨을 경험하면 그것만으로 전체 길이 참되고 수행이 완성되었다고 여기지는 않나요? 중요한 증거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그 경험에 대한 집착을 보고 아직 결론 내리지 않으려면 무엇을 살펴야 할까요?

“또 마음을 두고 이어 가는 작용이 가라앉아 내면이 맑고 마음이 하나가 되며, 그 두 작용은 없고 집중에서 나는 희열과 행복이 있는 둘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이것도 여래의 발자국·흔적·상아 자국이지만, 고귀한 제자는 아직 세존은 부처님이고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며 승가는 잘 수행한다고 결론 내리지 않느니라.”

Puna caparaṁ, brāhmaṇa, bhikkhu vitakkavicārānaṁ vūpasamā ajjhattaṁ sampasādanaṁ cetaso ekodibhāvaṁ avitakkaṁ avicāraṁ samādhijaṁ pītisukhaṁ du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vuccati, brāhmaṇa …pe…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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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선정에서는 첫째 선정의 마음을 두고 이어 가는 작용이 가라앉습니다. 그 대신 내면의 맑음과 마음의 하나됨, 집중에서 나는 희열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 선정도 여래의 발자국·다닌 흔적·상아 자국이라 할 중요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고귀한 제자는 아직 부처님은 완전히 깨달았고,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며, 승가는 잘 수행한다는 세 가지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깊어진 집중도 궁극적 확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묵상

마음이 더 하나로 모이고 집중에서 나는 깊은 희열과 행복이 생길 때 그 경험을 길의 끝으로 붙들지는 않나요? 더 섬세한 상태에서도 ‘아직’을 기억하면 어떤 집착을 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또 희열이 식으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분명히 알고,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셋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고귀한 이들이 ‘평정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무는 이’라고 부르는 경지이니라. 이것도 여래의 발자국·흔적·상아 자국이지만, 고귀한 제자는 아직 세존·가르침·승가에 대해 결론 내리지 않느니라.”

Puna caparaṁ, brāhmaṇa, bhikkhu pītiyā ca virāgā upekkhako ca viharati sato ca sampajāno, sukhañca kāyena paṭisaṁvedeti, yaṁ taṁ ariyā ācikkhanti ‘upekkhako satimā sukhavihārī’ti tatiy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vuccati, brāhmaṇa …pe…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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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선정에서는 희열이 가라앉고 평온과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이 선명해집니다. 행복은 사라지지 않고 몸으로 경험됩니다. 그래서 고귀한 이들은 이 상태를 “평온하고 알아차리며 행복하게 머무는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도 여래의 발자국·다닌 흔적·상아 자국이라 할 증거이지만, 고귀한 제자는 부처님·가르침·승가에 대해 아직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평온한 행복과 완전한 자유는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묵상

희열보다 잔잔한 평온이 커지면 성취감이 약해졌다고 오해하거나 다시 강한 느낌을 찾지는 않나요? 몸의 행복·평온·알아차림이 함께 있는 좋은 상태조차 최종 결론으로 삼지 않으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또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져, 행복도 괴로움도 없고 평정으로 알아차림이 청정한 넷째 선정에 들어 머무느니라. 이것도 여래의 발자국·흔적·상아 자국이니라. 그러나 고귀한 제자는 아직 세존은 부처님이고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며 승가는 잘 수행한다고 결론 내리지 않느니라.”

Puna caparaṁ, brāhmaṇa, bhikkhu sukhassa ca pahānā dukkhassa ca pahānā, pubbeva somanassadomanassānaṁ atthaṅgamā, adukkhamasukhaṁ upekkhāsatipārisuddhiṁ catutthaṁ jhānaṁ upasampajja viharati. Idampi vuccati, brāhmaṇa, tathāgatapadaṁ itipi, tathāgatanisevitaṁ itipi, tathāgatārañjitaṁ itipi. Na tveva tāva ariyasāvako niṭṭhaṁ gaccha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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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선정은 행복과 고통을 버리고, 그보다 앞서 기쁨과 슬픔이 사라진 상태입니다. 느낌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행복도 고통도 아닌 평온이 있고, 그 평온에 의해 알아차림이 청정해집니다. 이 깊은 상태도 여래의 발자국·다닌 흔적·상아 자국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고귀한 제자는 여전히 “아직”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선정의 완성과 괴로움의 끝에 대한 궁극적 확인은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묵상

행복과 고통을 넘어 평온으로 알아차림이 맑아진 고요를 경험하면 그것을 마지막 지점으로 삼고 싶지 않을까요? 가장 깊은 집중도 아직 단서라면 번뇌의 끝을 직접 알기 위해 지금 무엇을 더 닦아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