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알고 자유로워지기

지난 삶과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알고, 괴로움과 번뇌의 구조를 직접 본 뒤 마음의 자유와 완성된 확신에 이릅니다.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티와 오염이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때,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으로 기울이느니라. 한 생부터 십만 생과 세계가 수축·팽창한 여러 겁, 각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고통·수명과 죽고 다시 태어난 과정을 세부까지 기억하느니라. 이것도 여래의 세 흔적이지만 고귀한 제자는 세존·가르침·승가에 대해 아직 결론 내리지 않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pubbenivāsānussati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seyyathidaṁ—ekampi jātiṁ, dvepi jātiyo …pe… iti sākāraṁ sauddesaṁ anekavihitaṁ pubbenivāsaṁ anussarati. Idampi vuccati, brāhmaṇa, tathāgatapadaṁ itipi, tathāgatanisevitaṁ itipi, tathāgatārañjitaṁ itipi. Na tveva tāva ariyasāvako niṭṭhaṁ gaccha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지난 삶을 기억하는 앎은 한·두·세·네·다섯 생, 열·스물·서른·마흔·쉰 생, 백·천·십만 생과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까지 미칩니다. 수행자는 각 삶의 이름·가문·모습·음식·즐거움·고통·수명을 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났다가 다시 죽어 지금 이곳에 태어난 과정까지 특징과 세부와 함께 기억합니다. 이 폭넓은 앎도 여래의 발자국·다닌 흔적·상아 자국이지만, 세 가지 확신의 최종 결론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묵상

과거를 내가 원하는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것과 삶의 특징과 세부를 함께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아무리 넓고 특별한 기억이라도 괴로움의 끝을 직접 확인한 최종 결론은 아니라는 점을 어떻게 지킬까요?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티와 오염이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때, 존재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데 기울이느니라.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눈으로 낮고 높고, 아름답고 추한 존재가 좋거나 나쁜 곳에 나는 것을 보느니라. 몸·말·마음의 선악, 성스러운 이를 비방했는지, 바른 견해나 잘못된 견해에 따른 행위가 천상이나 지옥으로 이끌며 업에 따라 감을 아느니라. 이것도 여래의 세 흔적이나 세 결론은 아직이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sattānaṁ cutūpapāt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dibbena cakkhunā visuddhena atikkantamānusakena …pe… yathākammūpage satte pajānāti. Idampi vuccati, brāhmaṇa, tathāgatapadaṁ itipi, tathāgatanisevitaṁ itipi, tathāgatārañjitaṁ itipi. Na tveva tāva ariyasāvako niṭṭhaṁ gaccha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인간을 뛰어넘는 맑은 눈으로 존재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봅니다. 몸·말·마음으로 악행을 하고 성스러운 이를 비방하며 잘못된 견해에 따라 행동한 이는 죽은 뒤 나쁜 곳과 지옥에 태어납니다. 반대로 선행을 하고 성스러운 이를 비방하지 않으며 바른 견해에 따라 행동한 이는 좋은 곳과 천상에 태어납니다. 이처럼 업과 결과를 아는 앎도 여래의 세 흔적이지만, 고귀한 제자는 부처님·가르침·승가에 대한 결론을 아직 완성하지 않습니다.

묵상

몸·말·마음의 선택과 견해가 행위를 거쳐 결과로 이어진다는 연결을 내 삶에서는 어떤 장면으로 보고 있나요? 업의 법칙을 넓게 아는 것과 그 법칙을 낳는 번뇌가 실제로 끊어진 자유는 어떻게 다를까요?

“그렇게 집중된 마음이 깨끗하고 밝으며 티와 오염이 없고 부드럽고 쓰기 좋으며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때, 번뇌가 다함을 아는 데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이것은 괴로움, 이것은 괴로움의 기원,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 이것은 그 소멸로 이끄는 실천이니라’라고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번뇌·번뇌의 기원·소멸· 소멸로 이끄는 실천도 있는 그대로 아느니라.”

So evaṁ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āsavānaṁ khayañāṇāya cittaṁ abhininnāmeti. So ‘idaṁ dukkhan’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Ime āsav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samuday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o’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ayaṁ āsav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ṁ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셋째 앎의 대상은 번뇌의 끝입니다. 수행자는 먼저 괴로움, 그 기원, 그 소멸, 그 소멸로 이끄는 실천을 있는 그대로 압니다. 이어 번뇌들이 무엇인지, 번뇌의 기원과 소멸은 무엇인지, 그 소멸로 이끄는 실천은 무엇인지를 같은 네 구조로 압니다. 괴로움의 네 가지 진리와 번뇌의 네 구조를 하나도 빼지 않고 바로 보는 것입니다. 개별 현상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원인·끝·길을 완전하게 아는 지식입니다.

묵상

괴로움을 겪을 때 드러난 현상만 빨리 없애려 하며 그 기원·소멸·실천을 함께 보지는 않나요? 내 마음을 흐리는 번뇌 하나를 같은 네 가지 구조로 살펴본다면 지금 실천할 길은 무엇으로 보일까요?

“이것을 여래의 발자국, 여래가 다닌 흔적, 여래의 상아 자국이라 부르느니라. 이 단계에서 고귀한 제자는 아직 결론에 완전히 이른 것은 아니지만, 결론으로 나아가느니라. ‘세존은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이고,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며,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한다.’”

Idampi vuccati, brāhmaṇa, tathāgatapadaṁ itipi, tathāgatanisevitaṁ itipi, tathāgatārañjitaṁ itipi. Na tveva tāva ariyasāvako niṭṭhaṁ gato hoti, api ca kho niṭṭhaṁ gaccha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번뇌의 끝을 아는 단계에서는 중요한 변화가 생깁니다. 앞에서는 고귀한 제자가 아직 결론 내리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아직 결론에 완전히 이르지는 않았어도 결론을 향해 나아갑니다. 괴로움과 번뇌의 기원·소멸·실천을 있는 그대로 안 것은 완성된 자유는 아니지만, 그 자유로 곧장 향하는 앎이기 때문입니다. 발자국은 여전히 발자국이지만, 직접 확인 직전에 이른 단계라는 대조가 유지됩니다.

묵상

어떤 이해는 완성 자체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전환점일 수 있음을 구분하나요? 지금 내가 ‘아직 아니지만 나아가고 있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일과 그 전환을 지속할 조건은 무엇인가요?

“이와 같이 알고 보는 이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 존재하려는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자유로워지느니라. 자유로워지면 ‘자유로워졌다’는 앎이 생기고, 이렇게 아느니라. ‘다시 태어남은 끝났고, 영적 수행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은 완수되었고, 이런 상태로 다시 이어지지 않느니라.’”

Tassa evaṁ jānato evaṁ passato kāmāsavāpi cittaṁ vimuccati, bhavāsavāpi cittaṁ vimuccati, avijjāsavāpi citta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괴로움과 번뇌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면 결과가 마음의 자유로 나타납니다. 마음은 감각적 욕망의 번뇌, 계속 존재하려는 번뇌, 무명의 번뇌에서 각각 자유로워집니다. 그 자유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자유로워졌음을 아는 앎을 동반합니다. 다시 태어남이 끝났고, 수행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다 했고, 더 이상 이런 존재 상태로 이어질 것이 없다는 네 가지 완료의 앎입니다.

묵상

잠시 편안하다는 느낌과 번뇌의 연료가 다해 자유로워졌다는 앎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지금 내가 끊어 내고 싶은 번뇌는 감각적 욕망·존재에 대한 갈망·무명 가운데 어디에 가까운가요?

“이것을 여래의 발자국, 여래가 다닌 흔적, 여래의 상아 자국이라 부르느니라. 이제 고귀한 제자는 결론에 이르느니라. ‘세존은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이고,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며, 제자 승가는 잘 수행한다.’ 바라문이여, 이제야 코끼리 발자국의 비유가 세세하게 완성되느니라.”

Idampi vuccati, brāhmaṇa, tathāgatapadaṁ itipi, tathāgatanisevitaṁ itipi, tathāgatārañjitaṁ itipi. Ettāvatā kho, brāhmaṇa, ariyasāvako niṭṭhaṁ gato hoti: ‘sammāsambuddho bhagavā, svākkhāto bhagavatā dhammo, suppaṭipanno bhagavato sāvakasaṅgho’ti. Ettāvatā kho, brāhmaṇa, hatthipadopamo vitthārena paripūro hotī”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자유로워졌음을 알 때에야 발자국의 역할이 완성됩니다. 이전에는 계속 “아직 결론 내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마침내 결론에 이릅니다. 제자가 가르침의 길을 따라 수행하여 번뇌의 끝과 마음의 자유를 직접 알았기 때문에, 세존은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이고 가르침은 잘 설해졌으며 승가는 잘 수행한다는 세 가지 확신도 완성됩니다. 코끼리를 직접 본 추적꾼처럼 결과를 직접 안 뒤의 확신입니다.

묵상

남의 변화나 나의 평안한 체험을 넘어, 원인이 끊어진 결과를 직접 알 때 확신의 질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내가 진실로 믿는 길에서 아직 발자국으로만 알고 있는 것과 직접 확인한 것은 각각 무엇인가요?

자누쏘니가 부처님께 말했느니라. “훌륭합니다, 고따마시여! 정말 훌륭합니다. 뒤집힌 것을 바로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며, 길 잃은 이에게 길을 알려 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눈 있는 이가 모습을 보게 하듯 고따마께서 여러 방식으로 가르침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고따마와 가르침과 수행자 승가에 귀의합니다. 오늘부터 평생 귀의한 재가 제자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Evaṁ vutte, jāṇussoṇi brāhmaṇo bhagavantaṁ etadavoca: “abhikkantaṁ, bho gotama, abhikkantaṁ, bho gotama. Seyyathāpi, bho gotama, nikkujjitaṁ vā ukkujjeyya, paṭicchannaṁ vā vivareyya, mūḷhassa vā maggaṁ ācikkheyya, andhakāre vā telapajjotaṁ dhāreyya: ‘cakkhumanto rūpāni dakkhantī’ti; evamevaṁ bhotā gotamena anekapariyāyena dhammo pakāsito. Esāhaṁ bhavantaṁ gotamaṁ saraṇaṁ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Upāsakaṁ maṁ bhavaṁ gotamo dhāretu ajjatagge pāṇupetaṁ saraṇaṁ gatan”ti.

맛지마 니까야 MN 27 작은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 (Cūḷahatthipadopamasutta)

배경

설법을 들은 자누쏘니는 두 번 “훌륭하다”고 감탄합니다. 그는 가르침의 작용을 뒤집힌 것을 일으키고, 감춰진 것을 드러내고,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어둠에 등불을 드는 네 비유로 말합니다. 그런 뒤 부처님·가르침·수행자 승가에 귀의하고,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한 재가 제자로 기억해 달라고 청합니다. 남의 평판으로 시작한 관심이 직접 듣고 선택한 귀의로 끝납니다.

묵상

가르침이 나의 뒤집힌 생각을 세우고 가려진 것을 드러내며 길과 빛을 준 경험이 있나요? 그 감탄을 순간의 감정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평생 지킬 선택과 오늘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