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까지를 무더기라고 부릅니까?”
“과거·미래·현재, 안·밖, 거침·미세함,
열등·뛰어남, 멂·가까움에 속하는 모든 물질이
물질의 무더기이니라.
모든 느낌과 모든 인식도
과거에서 미래, 안에서 밖, 거침에서 미세함,
열등함에서 뛰어남, 멂에서 가까움까지 아울러
각각 느낌의 무더기와 인식의 무더기이니라.”
“Kittāvatā pana, bhante, khandhānaṁ khandhādhivacanaṁ hotī”ti? “Yaṁ kiñci, bhikkhu, rūpaṁ—atītānāgatapaccuppannaṁ ajjhattaṁ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ṁ vā sukhumaṁ vā, hīnaṁ vā paṇītaṁ vā, yaṁ dūre santike vā—ayaṁ rūpakkhandho. Yā kāci vedanā—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a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ā dūre santike vā—ayaṁ vedanākkhandho. Yā kāci saññā—atītānāgatapaccuppannā …pe… yā dūre santike vā—ayaṁ saññākkhandho.
맛지마 니까야 MN 109 보름밤에 관한 긴 경 (Mahāpuṇṇamasutta) 배경
“무더기”는 지금 눈앞에서 두드러지는 경험만 가리키지 않습니다. 물질은 과거·미래·현재라는 시간, 안·밖이라는 위치, 거침·미세함과 열등·뛰어남이라는 성질, 멂·가까움이라는 관계를 모두 포함합니다. 느낌과 인식도 어느 한 순간이나 한 성질만이 아니라 이 모든 대비를 각각 아우릅니다. 좋아하는 현재의 느낌만 골라 나라고 삼지 않고, 변해 온 경험 전체를 하나의 무더기로 보는 시야입니다.
묵상
지금 강한 느낌 하나가 내 경험의 전부라고 여긴 적이 있나요? 과거와 미래, 안과 밖, 거칠고 미세한 모습까지 시야를 넓힌다면 그 느낌이나 인식을 영원한 나로 붙드는 힘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모든 의지적 형성과 모든 의식도
과거·미래·현재, 안·밖, 거침·미세함,
열등·뛰어남, 멂·가까움의 온 범위를 아우르느니라.
이것이 의지적 형성의 무더기와 의식의 무더기이며,
이만큼이 무더기라는 이름이 미치는 범위이니라.”
Ye keci saṅkhārā—atītānāgatapaccuppannā ajjhattaṁ vā bahiddhā vā, oḷārikā vā sukhumā vā, hīnā vā paṇītā vā, ye dūre santike vā—ayaṁ saṅkhārakkhandho. Yaṁ kiñci viññāṇaṁ—atītānāgatapaccuppannaṁ ajjhattaṁ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ṁ vā sukhumaṁ vā, hīnaṁ vā paṇītaṁ vā, yaṁ dūre santike vā—ayaṁ viññāṇakkhandho. Ettāvatā kho, bhikkhu, khandhānaṁ khandhādhivacanaṁ hotī”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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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작용과 의식도 물질·느낌·인식과 같은 넓은 범위를 가집니다. 과거에 일으킨 의도와 미래를 향한 계획, 안에서 드러나는 마음과 밖의 조건에 반응하는 마음, 두드러지거나 미세한 움직임을 모두 포함합니다. 의식 역시 가까이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멀고 희미한 경험까지 아우릅니다. 부처님은 다섯 무더기의 범위를 어느 한 순간이나 한 성질로 좁히지 않으십니다. 이 전체를 보아야 특정 상태 하나를 영원한 나로 고정하는 습관에서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묵상
내가 세운 의도나 지금의 의식 상태를 변하지 않는 성격이라고 단정하나요? 시간과 안팎의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온 범위를 함께 본다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설명하는 말은 얼마나 부드러워질까요?
“세존이시여, 물질의 무더기가 알려지는
원인과 조건은 무엇입니까?
느낌의 무더기와 인식의 무더기,
의지적 형성의 무더기와 의식의 무더기가
각각 알려지는 원인과 조건은 무엇입니까?”
“Ko nu kho, bhante, hetu ko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Ko hetu ko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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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위를 확인한 수행자는 이제 다섯 무더기가 어떤 조건으로 성립해 알려지는지를 하나씩 묻습니다. 질문은 물질에서 시작해 느낌, 인식, 의지 작용, 의식까지 다섯 항목을 빠짐없이 거칩니다. 여기서 원인과 조건을 묻는다는 것은 무더기를 스스로 존재하는 고정 실체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험이 드러나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있습니다. 다음 답은 물질에는 네 큰 요소, 느낌·인식·의지 작용에는 접촉, 의식에는 이름과 물질이라는 서로 다른 조건을 제시합니다.
묵상
몸이나 느낌이나 생각이 아무 조건 없이 저절로 생긴다고 느끼나요? 지금 두드러진 경험이 어떤 접촉과 몸의 조건에 기대어 나타났는지 묻는다면, 고정된 나라는 생각과 자동 반응 사이에 어떤 틈이 생길까요?
“네 큰 요소가 물질의 무더기가 알려지는
원인이며 조건이니라.
접촉이 느낌·인식·의지적 형성의 무더기가 알려지는
원인이며 조건이니라.
이름과 물질이 의식의 무더기가 알려지는
원인이며 조건이니라.”
“Cattāro kho, bhikkhu, mahābhūtā hetu, cattāro mahābhūtā paccayo rūpa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vedan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ññākkhandhassa paññāpanāya. Phasso hetu, phasso paccayo saṅkhārakkhandhassa paññāpanāya. Nāmarūpaṁ kho, bhikkhu, hetu, nāmarūpaṁ paccayo viññāṇakkhandhassa paññāpanāyā”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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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은 땅·물·불·바람으로 일컬어지는 네 큰 요소에 기대어 설명됩니다. 느낌과 인식과 의지 작용은 감각 기관·대상·의식의 만남인 접촉을 조건으로 드러납니다. 의식은 정신적 측면인 이름과 물질적 측면인 물질에 기대어 알려집니다. 부처님은 다섯 무더기에 하나의 원인을 억지로 적용하지 않고 항목마다 알맞은 조건을 구별하십니다. 원인과 결과의 짝을 정확히 구별하면 경험을 자아의 명령이나 개인적 결함으로 돌리는 대신 조건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묵상
강한 느낌이나 의도가 생겼을 때 곧 나의 본성이라고 단정하나요? 그 앞의 접촉과 몸의 조건, 이름과 물질의 관계를 차례로 살핀다면 반응을 멈추거나 바꾸어 선택할 여지는 어느 지점에서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