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에서 자유로워지는 길

세 느낌을 바로 알아 잠재 성향을 끊고 지금 괴로움을 끝내는 길

“눈과 형상에서 눈의식과 접촉이 생기고, 접촉에서 즐겁거나 괴롭거나 중성인 느낌이 생기느니라. 즐거운 느낌을 반기거나 붙들지 않으면 탐욕이 따르지 않고, 괴로운 느낌에도 슬퍼하거나 지치거나 통곡하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느니라.”

Cakkhuñca, bhikkhave, paṭicca rūpe ca uppajjati cakkhuviññāṇaṁ, tiṇṇaṁ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So su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Tassa rāgānusayo nānuseti.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ṁ kandati na sammohaṁ āpajjati.

맛지마 니까야 MN 148 여섯 묶음의 여섯 경 (Chachakkasutta)

배경

같은 눈의 경험에서도 반응이 달라지면 잠재 성향은 자라지 않습니다. 눈·형상·눈의식의 만남인 접촉에서 세 느낌이 생기는 조건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즐거움을 승인하고 환영하며 달라붙지 않으면 탐욕이 따르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에 닿아도 슬퍼하고 지치고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느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습관의 먹이로 삼지 않는 길입니다.

묵상

즐거운 장면을 보았을 때 느낌은 분명히 알면서도 승인하고 환영하며 달라붙지 않을 수 있나요? 괴로운 장면 앞에서도 슬픔을 억누르지 않되 통곡과 혼란으로 증폭시키지 않는다면, 느낌과 반응 사이에 어떤 자유가 드러나나요?

“괴로운 느낌에는 반감이 따르지 않느니라. 중성 느낌의 생김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면 무명이 따르지 않느니라. 탐욕·반감·무명을 버리고 무지를 버려 앎을 일으키면 이 생에서 괴로움을 끝낼 수 있느니라.”

Tassa paṭighānusayo nānuseti. Adukkhamasu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tassā vedanāy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pajānāti. Tassa avijjānusayo nānuseti. So vata, bhikkhave, sukhāya vedanāya rāgānusayaṁ pahāya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bhavissatīti—ṭhānametaṁ vijj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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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느낌을 증폭하지 않으면 반감의 잠재 성향이 따르지 않습니다. 중성 느낌에 대해서도 발생과 소멸, 매력과 위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면 무명이 자리 잡지 않습니다. 즐거움의 탐욕을 버리고 괴로움의 반감을 몰아내며 중성 느낌의 무명을 뿌리 뽑고, 무지를 버려 앎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낼 수 있습니다. 세 느낌을 바로 아는 일이 괴로움의 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묵상

괴로운 느낌에서 반감을 키우지 않고 중성 느낌의 생김·사라짐·달콤함·위험·벗어남을 바로 아는 순간이 있나요? 탐욕·반감·무명을 하나씩 버리는 일이 먼 이상이 아니라 지금 이 느낌에 대한 반응에서 시작된다는 점은 무엇을 바꾸나요?

“귀·소리에서 귀의식·귀접촉과 세 느낌이, 코·냄새에서 코의식·코접촉과 세 느낌이 생기느니라. 혀·맛과 몸·감촉에서도 각각 의식·접촉과 세 느낌이 생기며, 즐거움을 붙들지 않으면 탐욕이 없고 괴로움에 무너지지 않으면 반감이 없으며 중성 느낌의 생멸·달콤함·위험·벗어남을 알면 무명이 없느니라. 그 성향들을 버리고 무지를 버려 앎을 일으키면 이 생에서 괴로움을 끝낼 수 있느니라.”

Sotañca, bhikkhave, paṭicca sadde ca uppajjati sotaviññāṇaṁ …pe…. Ghānañca, bhikkhave, paṭicca gandhe ca uppajjati ghānaviññāṇaṁ …pe…. Jivhañca, bhikkhave, paṭicca rase ca uppajjati jivhāviññāṇaṁ …pe…. Kāyañca, bhikkhave, paṭicca phoṭṭhabbe ca uppajjati kāyaviññāṇaṁ …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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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코·혀·몸에도 눈에서 밝힌 해방의 길이 각각 이어집니다. 각 기관과 대상에서 해당 의식이 생기고, 셋의 접촉에서 즐겁거나 괴롭거나 중성인 느낌이 생깁니다. 즐거운 느낌을 반기고 붙들지 않아 탐욕이 따르지 않고, 괴로운 느낌에 슬퍼하고 혼란에 빠지지 않아 반감이 따르지 않으며, 중성 느낌의 생김·사라짐·달콤함·위험·벗어남을 알아 무명이 따르지 않습니다. 세 잠재 성향을 버리고 무지를 버려 앎을 일으키면 바로 이 삶의 괴로움을 끝낼 수 있습니다.

묵상

귀·코·혀·몸 가운데 즐거움을 붙들지 않고 괴로움에 무너지지 않으며 중성 느낌을 바로 아는 연습이 가장 필요한 갈래는 무엇인가요? 네 감각마다 기관·대상·의식·접촉·세 느낌의 조건과 탐욕·반감·무명의 소멸을 따로 확인하면 해방은 얼마나 구체적으로 다가오나요?

“마음과 마음의 대상에서 마음의식과 마음접촉이 생기고, 접촉에서 세 느낌이 생기느니라. 즐거운 느낌을 반기거나 붙들지 않으면 탐욕이 따르지 않고, 괴로운 느낌에도 슬퍼하거나 지치거나 통곡하거나 혼란에 빠지지 않느니라.”

“Manañca, bhikkhave, paṭicca dhamme ca uppajjati manoviññāṇaṁ tiṇṇaṁ saṅgati phasso, 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So su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ābhinandati nābhivadati nājjhosāya tiṭṭhati. Tassa rāgānusayo nānuseti. Duk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na socati na kilamati na paridevati na urattāḷiṁ kandati na sammohaṁ āpajj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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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갈래에서도 해방의 길은 같습니다. 마음과 마음의 대상을 조건으로 마음의식이 생기고, 셋의 만남인 마음접촉에서 즐거움·괴로움·중성의 느낌이 생깁니다. 즐거운 생각을 승인하고 환영하며 붙들지 않으면 탐욕의 잠재 성향이 따르지 않습니다. 괴로운 생각에 닿더라도 슬퍼하고 지치고 통곡하며 가슴을 치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 때, 반감이 자랄 조건도 함께 끊어집니다.

묵상

즐거운 기억이나 상상을 붙들지 않아 탐욕이 자라지 않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괴로운 생각이 떠올라도 슬픔과 혼란을 더하지 않으면서 마음·대상·의식·접촉·느낌의 조건을 분명히 보면 반응의 방향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괴로운 마음의 느낌에는 반감이 따르지 않느니라. 중성 느낌의 생김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바로 알면 무명이 따르지 않느니라. 탐욕·반감·무명을 버리고 앎을 일으키면 바로 이 생에서 괴로움을 끝낼 수 있느니라.”

Tassa paṭighānusayo nānuseti. Adukkhamasukhāya vedanāya phuṭṭho samāno tassā vedanāya samudayañca atthaṅgamañca assādañca ādīnavañca nissaraṇañca yathābhūtaṁ pajānāti. Tassa avijjānusayo nānuseti. So vata, bhikkhave, sukhāya vedanāya rāgānusayaṁ pahāya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aṁ paṭivinodetvā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aṁ samūhanitvā avijjaṁ pahāya vijjaṁ uppādetvā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bhavissatīti—ṭhānametaṁ vijjati.

맛지마 니까야 MN 148 여섯 묶음의 여섯 경 (Chachakk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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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마음의 느낌을 증폭하지 않으면 반감의 성향이 따르지 않습니다. 중성인 마음의 느낌도 발생과 소멸, 매력과 위험,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면 무명의 성향이 남지 않습니다. 이렇게 즐거움의 탐욕을 버리고 괴로움의 반감을 물리치며 중성 느낌의 무명을 뿌리 뽑고, 무지를 버려 앎을 일으키면 바로 이 삶에서 괴로움을 끝내는 일이 가능합니다. 부처님의 결론은 명확한 긍정입니다.

묵상

마음속 중성 느낌을 흐릿하게 지나치지 않고 그 생김과 사라짐,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까지 알고 있나요? 즐거움의 탐욕과 괴로움의 반감과 중성의 무명이 따르지 않는 순간, 괴로움의 끝은 지금의 마음에서 어떻게 확인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