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증에서 해방으로

여섯 감각의 모든 요소에 대한 싫증과 탐욕 소멸과 해방

“이와 같이 보는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눈·형상·눈의식·눈접촉·느낌·갈애에 싫증 내느니라. 귀와 소리의 여섯, 코와 냄새의 여섯, 혀와 맛의 여섯, 몸과 감촉의 여섯에도 싫증 내며, 마음·대상·마음의식·마음접촉·느낌·갈애에도 싫증 내느니라.”

Evaṁ passaṁ, bhikkhave, sutavā ariyasāvako cakkhusmiṁ nibbindati, rūpesu nibbindati, cakkhuviññāṇe nibbindati, cakkhusamphasse nibbindati, vedanāya nibbindati, taṇhāya nibbindati. Sotasmiṁ nibbindati, saddesu nibbindati …pe… ghānasmiṁ nibbindati, gandhesu nibbindati … jivhāya nibbindati, rasesu nibbindati … kāyasmiṁ nibbindati, phoṭṭhabbesu nibbindati … manasmiṁ nibbindati, dhammesu nibbindati, manoviññāṇe nibbindati, manosamphasse nibbindati, vedanāya nibbindati, taṇhāya nibbindati.

맛지마 니까야 MN 148 여섯 묶음의 여섯 경 (Chachakkasutta)

배경

조건적 생김과 무아, 느낌에 대한 두 반응을 이와 같이 본 성스러운 제자에게 싫증이 일어납니다. 이는 감각을 혐오한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에서 영원한 만족과 자아의 근거를 찾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귀·코·혀·몸의 각 갈래에서도 기관·대상·의식·접촉·느낌·갈애 모두에 같은 싫증이 일어납니다. 눈에서 마음까지 서른여섯 요소 어느 것도 붙잡을 피난처가 아니라는 통찰이 완전해집니다.

묵상

여섯 감각의 경험을 미워하는 것과 그것에서 영원한 만족과 자아를 찾는 일에 싫증 내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요? 눈·귀·코·혀·몸·마음의 각 여섯 요소를 빠짐없이 살필 때, 감각의 즐거움을 계속 얻어야 한다는 압박이 약해지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싫증 내어 탐욕에서 벗어나고, 탐욕에서 벗어나 해방되며, 해방되었을 때 ‘해방되었다’는 앎이 생기느니라. ‘태어남은 다했고, 청정한 삶은 완성되었으며, 할 일을 마쳤고, 다시 이런 존재가 되지 않는다’고 아느니라.” 이 설법을 듣는 동안 수행자 예순 명의 마음이 붙잡음 없이 번뇌에서 해방되었느니라.

Nibbindaṁ virajjati, virāgā vimuccati. Vimuttasmiṁ vimuttamiti ñāṇaṁ hoti. ‘Khīṇā jāti, vusitaṁ brahmacariyaṁ, kataṁ karaṇīyaṁ, nāparaṁ itthattāyā’ti pajānātī”ti. Idamavoca bhagavā. Attamanā te bhikkhū bhagavato bhāsitaṁ abhinandunti. Imasmiṁ kho pana veyyākaraṇasmiṁ bhaññamāne saṭṭhimattānaṁ bhikkhūnaṁ anupādāya āsavehi cittāni vimucciṁsūti.

맛지마 니까야 MN 148 여섯 묶음의 여섯 경 (Chachakkasutta)

배경

싫증은 탐욕에서 벗어남으로, 탐욕의 소멸은 해방으로 이어집니다. 해방은 막연한 기분이 아니라 해방되었다는 분명한 앎과 함께합니다. 제자는 태어남이 다했고 청정한 삶을 완성했으며 할 일을 마쳐 다시 같은 존재 과정으로 돌아오지 않음을 압니다. 부처님이 말씀을 마치자 수행자들은 기뻐하며 받아들였고, 설법이 진행되는 동안 예순 명의 수행자가 붙잡지 않음으로 번뇌에서 마음이 해방되었습니다.

묵상

감각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일에 싫증이 나 탐욕이 엷어지고, 그 소멸을 스스로 분명히 아는 흐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수행자 예순 명이 설법을 듣는 동안 붙잡음 없이 해방된 결말처럼, 지금 놓을 수 있는 한 가지 취착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