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극단을 넘어선 중도

사슴동산의 설법 자리와 두 극단, 그리고 중도인 여덟 갈래 길

“한때 복되신 분(바가와)께서 바라나시의 이시빠따나에 있는 사슴 동산에 머물고 계셨다. 그곳에서 그분은 음식을 얻어 살아가는 다섯 수행자(빅쿠)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집을 떠난 사람이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치우침이 있다.’”

Ekaṁ samayaṁ bhagavā bārāṇasiyaṁ viharati isipatane migadāye. Tatra kho bhagavā pañcavaggiye bhikkhū āmantesi: “Dveme, bhikkhave, antā pabbajitena na sevitabbā.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경은 가르침의 장소와 듣는 사람들을 먼저 밝힙니다. 바가와는 말씀을 건네는 이를 높이는 호칭이며, 여기서는 복되신 분으로 옮겼습니다. 빅쿠는 음식을 얻어 살아가는 수행자를 가리키므로 한국의 직함을 그대로 대입하지 않았습니다. 이어 집을 떠난 사람이 가까이해서는 안 될 두 가지 치우침을 먼저 예고합니다. 아직 그 내용을 말하지 않은 채 다음 물음으로 이어지는 구성입니다. 가르침은 좋은 태도를 막연히 권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고, 어떤 길을 피해야 하는지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묵상

두 쪽 가운데 하나만 택해야 한다고 느껴 마음이 지쳤던 일이 있다면, 어느 순간에 그 좁아진 선택을 알아차렸나요? 지금 답을 고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치우침”이라는 말에서 잠시 머무는 낱말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그 두 가지인가? 하나는 감각의 즐거움에 빠져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는 수준이 낮고 거칠며,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따르는 방식이고, 거룩하지 않으며, 이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괴롭히는 데 매달리는 것이다. 이는 괴롭고, 거룩하지 않으며, 이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Katame dve? Yo cāyaṁ kāmesu kāmasukhallikānuyogo hīno gammo pothujjaniko anariyo anatthasaṁhito, yo cāyaṁ attakilamathānuyogo dukkho anariyo anatthasaṁhito.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먼저 두 치우침이 어떤 것인지 묻고 각각을 설명합니다. 즐거움에만 매달리는 쪽과 자신을 괴롭히는 쪽은 모습이 다르지만, 이 경에서는 둘 다 이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운데 길은 두 방식을 적당히 섞는 선택이 아니라 두 치우침을 따르지 않는 길입니다. 따타가따는 이 대목에서 말하는 이가 자신을 가리키는 호칭이며, 진리를 깨달은 이로 뜻을 풀었습니다. 닙바나에 붙인 탐냄·성냄·어리석음이 꺼짐이라는 설명은 용어를 이해하기 위한 짧은 풀이입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이 길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덟 갈래로 밝힙니다.

묵상

감각의 즐거움에만 매달리거나 자신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몸과 마음에는 어떤 느낌이 있었나요? 어느 쪽을 잘못이라고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치우침과 다른 방향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수행자들이여, 진리를 깨달은 이(따타가따)는 이 두 가지 치우침을 피하는 가운데 길(맛지마 빠띠빠다)을 온전히 깨달았다. 이 길은 보는 눈을 열고 앎(냐나)을 일으키며, 고요해짐과 직접 앎, 온전한 깨달음과 탐냄·성냄·어리석음이 꺼짐(닙바나)으로 이끈다.”

Ete kho, bhikkhave, ubho ante anupagamma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이어서 두 치우침을 피하는 길이 어디로 이끄는지 밝힙니다. 즐거움에만 매달리는 쪽과 자신을 괴롭히는 쪽은 모습이 다르지만, 이 경에서는 둘 다 이로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운데 길은 두 방식을 적당히 섞는 선택이 아니라 두 치우침을 따르지 않는 길입니다. 따타가따는 이 대목에서 말하는 이가 자신을 가리키는 호칭이며, 진리를 깨달은 이로 뜻을 풀었습니다. 닙바나에 붙인 탐냄·성냄·어리석음이 꺼짐이라는 설명은 용어를 이해하기 위한 짧은 풀이입니다. 다음 대목에서는 이 길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덟 갈래로 밝힙니다.

묵상

감각의 즐거움에만 매달리거나 자신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순간이 있었다면, 그때 몸과 마음에는 어떤 느낌이 있었나요? 어느 쪽을 잘못이라고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치우침과 다른 방향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수행자들이여, 진리를 깨달은 이가 온전히 깨달은 가운데 길, 보는 눈을 열고 앎을 일으키며 고요해짐과 직접 앎, 온전한 깨달음과 꺼짐으로 이끄는 그 길은 무엇인가? 바로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아리야 앗탕기까 막가)이다. 그 여덟 가지는 다음과 같다.”

Katamā ca sā, bhikkhave,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ṁ—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길의 이름을 밝히는 대답이 뒤의 목록으로 이어집니다. 가운데 길이 무엇인지 묻는 물음은 여덟 갈래의 목록으로 이어집니다. 이해하고 마음먹는 일에서 시작해 말과 몸으로 하는 일, 먹고사는 방식, 힘씀, 알아차림, 마음을 모으는 일까지 함께 다룹니다. 따라서 이 길을 생각만 바꾸는 일이나 한 가지 명상 방법으로 좁혀 읽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몸으로 하는 일을 바르게 한다는 풀이는 여덟 갈래 길의 문맥에 따른 것입니다. 빠알리 낱말이 쓰이는 모든 자리에서 뜻을 똑같이 고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 문장은 이 길이 향하는 바를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여덟 항목을 천천히 읽을 때 지금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한 낱말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잘하거나 못하는지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낱말이 오늘의 말이나 행동 한 장면과 어떻게 맞닿아 보이나요?

“바르게 이해함(딧티), 바르게 마음먹음(상깝빠), 바르게 말함(와짜), 몸으로 하는 일을 바르게 함(깜만따), 먹고사는 일을 바르게 함(아지와), 바르게 힘씀(와야마), 바르게 알아차림(사띠), 마음을 바르게 모음(사마디).”

sammādiṭṭhi sammāsaṅkappo sammāvācā sammākammanto sammāājīvo sammāvāyāmo sammāsati sammāsamādhi.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앞서 이름을 밝힌 길의 여덟 갈래를 차례로 열거합니다. 가운데 길이 무엇인지 묻는 물음은 여덟 갈래의 목록으로 이어집니다. 이해하고 마음먹는 일에서 시작해 말과 몸으로 하는 일, 먹고사는 방식, 힘씀, 알아차림, 마음을 모으는 일까지 함께 다룹니다. 따라서 이 길을 생각만 바꾸는 일이나 한 가지 명상 방법으로 좁혀 읽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몸으로 하는 일을 바르게 한다는 풀이는 여덟 갈래 길의 문맥에 따른 것입니다. 빠알리 낱말이 쓰이는 모든 자리에서 뜻을 똑같이 고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 문장은 이 길이 향하는 바를 다시 확인합니다.

묵상

여덟 항목을 천천히 읽을 때 지금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한 낱말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잘하거나 못하는지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낱말이 오늘의 말이나 행동 한 장면과 어떻게 맞닿아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