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진리의 내용

괴로움과 그 원인, 소멸, 소멸로 이끄는 길의 정확한 정의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진리를 깨달은 이가 온전히 깨달은 가운데 길이다. 이 길은 보는 눈을 열고 앎을 일으키며, 고요해짐과 직접 앎, 온전한 깨달음과 꺼짐으로 이끈다.”

Ayaṁ kho sā, bhikkhave, majjhimā paṭipadā tathāgatena abhisambuddhā cakkhukaraṇī ñāṇakaraṇī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여덟 갈래를 열거한 뒤 가운데 길의 목적을 다시 확인합니다. 가운데 길의 목적을 확인한 뒤, 경은 첫째 진리인 괴로움의 내용을 밝힙니다. 태어남과 늙음, 병듦과 죽음뿐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하는 일,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일,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도 들어갑니다. 마지막의 다섯 묶음은 몸과 마음을 이루는 것들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묶음을 가리킵니다. 집착이라는 마음만을 괴로움이라고 바꾸어 읽거나 삶 전체에 대한 단순한 비관으로 끝내기보다, 뒤에서 이 괴로움에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묵상

가운데 길의 목적 바로 뒤에 괴로움의 목록이 놓인 순서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이 목록이 지금 불편하다면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을 수 있다면 만남과 헤어짐, 얻지 못함 가운데 어떤 말이 조용히 눈에 머무나요?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괴로움(둑카)에 대한 거룩한 진리(아리야 삿짜)다. 태어남도 괴로움이고, 늙음도 괴로움이고, 병듦도 괴로움이고, 죽음도 괴로움이다.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하는 것도 괴로움이고,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고,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짧게 말하면, 집착의 대상이 되는 몸과 마음의 다섯 묶음(빤쭈빠다낙칸다)이 괴로움이다.”

Idaṁ kho pana, bhikkhave, dukkhaṁ ariyasaccaṁ— jātipi dukkhā, jarāpi dukkhā, byādhipi dukkho, maraṇampi dukkhaṁ, appiyehi sampayogo dukkho, piyehi vippayogo dukkho, yampicchaṁ na labhati tampi dukkhaṁ—saṅkhittena pañcupādānakkhandhā dukkhā.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이어서 괴로움에 대한 진리와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힙니다. 가운데 길의 목적을 확인한 뒤, 경은 첫째 진리인 괴로움의 내용을 밝힙니다. 태어남과 늙음, 병듦과 죽음뿐 아니라 좋아하지 않는 것과 함께하는 일, 좋아하는 것과 헤어지는 일,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는 일도 들어갑니다. 마지막의 다섯 묶음은 몸과 마음을 이루는 것들을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집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묶음을 가리킵니다. 집착이라는 마음만을 괴로움이라고 바꾸어 읽거나 삶 전체에 대한 단순한 비관으로 끝내기보다, 뒤에서 이 괴로움에 어떤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지 함께 살펴야 합니다.

묵상

가운데 길의 목적 바로 뒤에 괴로움의 목록이 놓인 순서는 어떻게 느껴지나요? 이 목록이 지금 불편하다면 잠시 건너뛰어도 괜찮아요. 읽을 수 있다면 만남과 헤어짐, 얻지 못함 가운데 어떤 말이 조용히 눈에 머무나요?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사무다야)에 대한 거룩한 진리다. 그것은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지는 갈망(딴하)이다. 즐김과 탐냄이 함께하고, 여기저기서 즐거움을 찾는 갈망이다. 곧, 감각의 즐거움을 바라는 갈망(까마 딴하), 존재하려는 갈망(바와 딴하), 존재하지 않으려는 갈망(위바와 딴하)이다.”

Idaṁ kho pana, bhikkhave, dukkhasamudayaṁ ariyasaccaṁ— yāyaṁ taṇhā ponobbhavikā nandirāgasahagatā tatratatrābhinandinī, seyyathidaṁ— kāmataṇhā, bhavataṇhā, vibhavataṇhā.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배경

여기서는 갈망의 성격과 세 갈래를 밝힙니다. 첫째 진리 다음에는 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과 그 원인이 멎는 일이 이어집니다. 갈망에는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진다는 설명과 즐김·탐냄이 함께한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감각의 즐거움을 바라는 것, 존재하려는 것, 존재하지 않으려는 것은 서로 구별되는 세 갈래입니다. 뒤의 멎음은 다른 대상이 아니라 바로 그 갈망을 이어받습니다. 존재하지 않으려는 갈망을 현대인의 피로, 휴식의 바람, 힘든 마음과 곧바로 같은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 대목은 원인으로 밝힌 것과 놓이는 것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묵상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과 그 대상을 잠시 나누어 바라볼 수 있었던 때가 있나요? 그런 때가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기저기서 즐거워함”과 “달라붙지 않음” 가운데 지금 더 오래 남는 표현은 무엇인가요?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멎음(니로다)에 대한 거룩한 진리다. 바로 그 갈망이 남김없이 사그라지고 멎는 것, 그 갈망을 버리는 것, 놓아 버리는 것, 그것에서 풀려나는 것, 더는 매달리지 않는 것이다.”

Idaṁ kho pana, bhikkhave, dukkhanirodhaṁ ariyasaccaṁ— yo tassāyeva taṇhāya asesavirāganirodho cāgo paṭinissaggo mutti anālayo.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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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앞의 갈망이 남김없이 멎는 일을 설명합니다. 첫째 진리 다음에는 괴로움이 생겨나는 원인과 그 원인이 멎는 일이 이어집니다. 갈망에는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진다는 설명과 즐김·탐냄이 함께한다는 설명이 붙습니다. 감각의 즐거움을 바라는 것, 존재하려는 것, 존재하지 않으려는 것은 서로 구별되는 세 갈래입니다. 뒤의 멎음은 다른 대상이 아니라 바로 그 갈망을 이어받습니다. 존재하지 않으려는 갈망을 현대인의 피로, 휴식의 바람, 힘든 마음과 곧바로 같은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이 대목은 원인으로 밝힌 것과 놓이는 것의 관계를 보여 줍니다.

묵상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과 그 대상을 잠시 나누어 바라볼 수 있었던 때가 있나요? 그런 때가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여기저기서 즐거워함”과 “달라붙지 않음” 가운데 지금 더 오래 남는 표현은 무엇인가요?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 멎도록 이끄는 실천의 길에 대한 거룩한 진리다. 바로 거룩한 여덟 갈래의 길이다. 그 여덟 가지는 다음과 같다. 바르게 이해함, 바르게 마음먹음, 바르게 말함, 몸으로 하는 일을 바르게 함, 먹고사는 일을 바르게 함, 바르게 힘씀, 바르게 알아차림, 마음을 바르게 모음.”

Idaṁ kho pana, bhikkhave,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 ariyasaccaṁ—ayameva ariyo aṭṭhaṅgiko maggo, seyyathidaṁ—sammādiṭṭhi …pe… sammāsamādhi.

상윳따 니까야 SN 56.11 전법륜경 (Dhammacakkappavattan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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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진리는 괴로움이 멎도록 이끄는 실천의 길을 밝힙니다. 그것은 앞에서 가운데 길이라고 소개한 바로 그 여덟 갈래의 길입니다. 이 위치의 빠알리 원문은 이미 나온 목록을 반복 생략 표시로 줄였으므로, 한국어에서는 앞서 확인한 여덟 항목을 모두 풀어 옮겼습니다. 새로운 항목을 보탠 것은 아닙니다. 이 반복은 괴로움에 대한 설명과 실제로 걸어야 하는 길을 하나로 연결합니다. 뒤에서는 이 길을 안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닦아야 하며, 닦았음을 확인하는 일까지 구별합니다.

묵상

여덟 갈래를 다시 읽을 때 처음과 다르게 눈에 들어오는 낱말이 있나요? 아무것도 달라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요. 가장 부족한 부분을 평가하기보다, 오늘의 말이나 선택과 조용히 이어지는 한 표현이 있다면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