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모두 불타고 있는가?
수행자들이여, 눈이 불타고 형상이 불타며,
눈의식과 눈접촉이 불타느니라.
눈접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느니라.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으로
불탄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
Kiñca, bhikkhave, sabbaṁ ādittaṁ? Cakkhu, bhikkhave, ādittaṁ, rūpā ādittā, cakkhuviññāṇaṁ ādittaṁ, cakkhusamphasso āditto. Yampidaṁ cakkhu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mpi ādittaṁ. Kena ādittaṁ? ‘Rāgagginā, dosagginā, mohagginā ādittaṁ,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ādittan’ti vadāmi …pe…
상윳따 니까야 SN 35.28 불의경 (Ādittasutta) 배경
앞 카드의 선언을 이어 “무엇이 모두 불타는가?”라고 묻고, 눈의 갈래로 처음 답하는 대목입니다. 원문은 눈·형상·눈의식·눈접촉과 접촉에서 생기는 즐거움·괴로움·중성의 느낌을 순서대로 놓습니다. 불은 탐욕·성냄·어리석음의 셋에서 끝나지 않고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까지 빠짐없이 이어집니다. 끝의 “…pe…”는 같은 구조가 귀와 코로 되풀이됨을 줄인 원문 표지이며, 뒤 카드가 혀부터 다시 온전히 잇습니다. 이렇게 범위를 넓혀 보는 일이 뒤의 싫증과 해방의 근거가 됩니다.
묵상
눈에 들어온 장면에서 대상, 그것을 아는 의식, 접촉, 느낌을 한꺼번에 같은 것으로 여겼던 순간이 있나요? 경험을 탐욕이나 성냄이라고 진단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은 네 단계와 세 느낌 가운데 구별해 볼 수 있는 하나가 있나요?
“혀가 불타고 맛이 불타며,
혀의식과 혀접촉이 불타느니라.
혀접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느니라.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으로
불탄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
jivhā ādittā, rasā ādittā, jivhāviññāṇaṁ ādittaṁ, jivhāsamphasso āditto. Yampidaṁ jivhā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mpi ādittaṁ. Kena ādittaṁ? ‘Rāgagginā, dosagginā, mohagginā ādittaṁ,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ādittan’ti vadāmi …pe…
상윳따 니까야 SN 35.28 불의경 (Ādittasutta) 배경
눈의 갈래 뒤 원문은 귀와 코를 같은 정형구로 줄인 다음, 혀의 갈래를 다시 온전히 제시합니다. 혀·맛·혀의식·혀접촉·세 느낌이라는 다섯 층과, 무엇으로 타는지를 묻고 불의 전체 목록을 답하는 순서는 눈과 같습니다. 카드 끝의 “…pe…”는 몸의 갈래가 같은 방식으로 반복됨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원문의 두 생략 표지는 귀·코·몸을 빠뜨리는 허가가 아니라 여섯 감각에 같은 구조가 적용된다는 표시입니다. 맛의 즐거움이나 괴로움도 접촉을 조건으로 한 느낌임을 보는 것이 이 반복의 수행적 뜻입니다.
묵상
맛을 경험할 때 혀, 맛, 혀의식, 접촉, 느낌 가운데 평소 거의 구별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을 잘못이라고 정할 필요는 없어요. 한 입의 경험에서 조건이 이어지는 순서를 잠깐 알아볼 수 있나요?
“마음이 불타고 마음의 대상이 불타며,
마음의식과 마음접촉이 불타느니라.
마음접촉을 조건으로 생기는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도 불타느니라.
무엇으로 불타는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태어남·늙음·죽음과 슬픔·비탄·괴로움·근심·절망으로
불탄다고 나는 말하느니라.”
mano āditto, dhammā ādittā, manoviññāṇaṁ ādittaṁ, manosamphasso āditto. Yampidaṁ manosamphassapaccayā uppajjati vedayitaṁ sukhaṁ vā dukkhaṁ vā adukkhamasukhaṁ vā tampi ādittaṁ. Kena ādittaṁ? ‘Rāgagginā, dosagginā, mohagginā ādittaṁ, jātiyā jarāya maraṇena sokehi paridevehi dukkhehi domanassehi upāyāsehi ādittan’ti vadāmi.
상윳따 니까야 SN 35.28 불의경 (Ādittasutta) 배경
귀·코·혀·몸의 정형 반복을 지나, 원문은 마지막인 마음 갈래를 온전히 펼칩니다. 마음·마음의 대상·마음의식·마음접촉·세 느낌을 들고, 세 가지 불과 태어남에서 절망까지의 목록을 다시 완전하게 닫습니다. “마음의 대상”에는 이 경 안에서 생각이나 기억의 구체적 예가 따로 붙지 않으므로 현대 심리 용어를 경문에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눈에서 마음까지 여섯 갈래가 완성되면서, 불타는 “모든 것”은 감각기관만이 아니라 대상·의식·접촉·느낌까지 포함한다는 논리가 분명해집니다.
묵상
마음에 어떤 대상이 떠올랐을 때 대상 자체와 그것을 아는 의식, 접촉 뒤의 느낌을 구별해 본 적이 있나요?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탐욕·성냄·어리석음이라고 판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가운데 지금 가장 분명한 한 단계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