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짜나여,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 한 극단이고, ‘모든 것이 없다’는 것이 둘째 극단이니라. 여래는 이 두 극단으로 나아가지 않고 중도로 가르침을 펴느니라. 무명을 조건으로 의지적 형성이 생기고, 의지적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기며 …, 이와 같이 이 괴로움의 온 무더기가 일어나느니라.”
‘Sabbamatthī’ti kho, kaccāna, ayameko anto. ‘Sabbaṁ natthī’ti ayaṁ dutiyo anto. Ete te, kaccāna, ubho ante anupagamma majjhena tathāgato dhammaṁ deseti: ‘avijjāpaccayā saṅkhārā; 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ṁ …pe… evametassa kevalassa dukkhakkhandhassa samudayo hoti.
상윳따 니까야 SN 12.15 까짜야나곳따경 (Kaccānagottasutta)배경
바른 견해를 정의한 뒤 부처님은 “모든 것이 있다”와 “모든 것이 없다”를 하나와 둘, 두 극단으로 명시하고 곧바로 조건 발생을 설하십니다. 그러므로 중도는 두 주장을 반씩 섞는 타협이 아니라 현상을 조건의 연쇄로 보는 길입니다. 원문은 의식 다음을 …pe…로 줄이며, SN 12.2의 펼친 정형구에서 그 순서는 무명→의지적 형성→의식→정신과 물질→여섯 감각 영역→접촉→느낌→갈애→집착→존재→태어남→늙음과 죽음, 이어 슬픔·비탄·고통·근심·절망입니다. 이 병행 구절의 층위를 밝혀 원문 생략과 보충을 구별했습니다.
묵상
두 극단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느꼈다가, 결과보다 그 결과를 만든 조건을 살펴본 적이 있나요? 열두 고리를 모두 외울 필요는 없어요. 지금 일어난 반응 하나에서 바로 앞 조건 하나를 본다면 처음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