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왓티에서 계실 때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미 태어난 중생을 지탱하고 태어나려는 중생을 도와주는 네 가지 자양분이 있느니라. 무엇이 넷인가? 거칠거나 미세한 먹는 자양분이 첫째요, 닿음이 둘째요, 마음의 의도가 셋째요, 의식이 넷째이니라.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그 네 가지 자양분이니라.’
Sāvatthiyaṁ … “cattārome, bhikkhave, āhārā bhūtānaṁ vā sattānaṁ ṭhitiyā sambhavesīnaṁ vā anuggahāya. Katame cattāro? Kabaḷīkāro āhāro oḷāriko vā sukhumo vā, phasso dutiyo, manosañcetanā tatiyā, viññāṇaṁ catutthaṁ. Ime kho, bhikkhave, cattāro āhārā bhūtānaṁ vā sattānaṁ ṭhitiyā sambhavesīnaṁ vā anuggahāya.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배경
세존께서 사왓티에 계실 때 이 경을 여셨습니다. 뒤이어 나올 네 가지 강렬한 비유가 모두 여기서 시작합니다. "먹는 자양분"은 몸을 유지하는 밥과 반찬을, "닿음"은 감각기관과 대상이 만나는 것을, "마음의 의도"는 무엇을 하려는 의지 자체를, "의식"은 보고 듣고 아는 작용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이 넷은 순서대로 거칠고 눈에 잘 띄는 것에서 점점 미세한 것으로 나아갑니다. 이어지는 네 개의 비유는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며, 각 자양분이 왜 위험한지 하나씩 보여 줍니다.
묵상
오늘 하루를 지탱해 온 것을 떠올려 보면 어떤가요? 먹은 음식만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눈 눈빛, 마음속에 품었던 의도,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알아차림 자체도 나를 지탱해 왔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