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음식 - 사막을 건너는 부부

물질적 음식에 대한 집착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극단적인 비유로 보여줍니다.

수행자들이여, 먹는 자양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비유하면, 어느 부부가 적은 양식을 지니고 광야 길에 들어섰느니라. 그들에게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아들이 하나 있었느니라. 광야를 가던 두 사람의 그 적은 양식은 차츰 다하여 없어져 가는데, 아직 건너지 못한 광야는 그대로 남아 있었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kabaḷīkāro āhāro daṭṭhabbo? Seyyathāpi, bhikkhave, dve jāyampatikā parittaṁ sambalaṁ ādāya kantāramaggaṁ paṭipajjeyyuṁ. Tesamassa ekaputtako piyo manāpo. Atha kho tesaṁ, bhikkhave, dvinnaṁ jāyampatikānaṁ kantāragatānaṁ yā parittā sambalamattā, sā parikkhayaṁ pariyādānaṁ gaccheyya. Siyā ca nesaṁ kantārāvaseso anatiṇṇo.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네 가지 자양분 가운데 가장 거칠고 눈에 잘 띄는 먹는 자양분부터 비유가 시작됩니다. 부부와 외아들, 줄어드는 양식, 아직 남은 광야라는 네 요소가 나란히 놓이면서 앞으로 벌어질 일의 무게를 미리 짐작하게 합니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아들"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은 이 아이가 그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물질적 자양분에 대한 집착이 극한 상황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이려 하십니다. 다음 편에서 그 결말이 이어집니다.

묵상

가진 것이 자꾸 줄어드는데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고 느낀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 다급함 속에서 마음이 무엇을 붙잡고 싶어 하는지, 지금은 안전한 자리에서 가만히 떠올려 보셔도 좋습니다.

이에 부부에게 이런 생각이 떠올랐느니라. ‘우리의 적은 양식은 다하여 없어졌고 아직 건너지 못한 광야는 남아 있다. 차라리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 외아들을 죽여 그 살을 말려 먹으며 남은 광야를 건너가는 것이 우리 셋이 다 죽는 것보다 나으리라.’ 부부는 외아들을 죽여 그 살을 먹으며 광야를 건너면서, 가슴을 치며 부르짖었느니라. ‘외아들아, 어디 있느냐. 외아들아, 어디 있느냐.’

Atha kho tesaṁ, bhikkhave, dvinnaṁ jāyampatikānaṁ evamassa: ‘amhākaṁ kho yā parittā sambalamattā sā parikkhīṇā pariyādiṇṇā. Atthi cāyaṁ kantārāvaseso anittiṇṇo. Yannūna mayaṁ imaṁ ekaputtakaṁ piyaṁ manāpaṁ vadhitvā vallūrañca soṇḍikañca karitvā puttamaṁsāni khādantā evaṁ taṁ kantārāvasesaṁ nitthareyyāma, mā sabbeva tayo vinassimhā’ti. Atha kho te, bhikkhave, dve jāyampatikā taṁ ekaputtakaṁ piyaṁ manāpaṁ vadhitvā vallūrañca soṇḍikañca karitvā puttamaṁsāni khādantā evaṁ taṁ kantārāvasesaṁ nitthareyyuṁ. Te puttamaṁsāni ceva khādeyyuṁ, ure ca paṭipiseyyuṁ: ‘kahaṁ, ekaputtaka, kahaṁ, ekaputtakā’ti.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앞 편의 설정이 여기서 결말을 맺습니다. 부부의 속마음("차라리...나으리라")과 실제 행동(아들을 죽여 그 살을 먹으며 건넘), 그리고 그 뒤에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이 원문 그대로 이어져 있습니다. "외아들아, 어디 있느냐"는 부르짖음이 두 번 반복되는 것은 슬픔의 크기를 강조하는 원문의 표현이며 줄이지 않았습니다. 세존께서는 이 장면으로 물질적 자양분, 즉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것마저 수단으로 삼게 만들 수 있음을 보이십니다. 다음 편에서 이 비유가 뜻하는 바를 직접 밝히십니다.

묵상

이 장면은 마음이 힘들면 잠시 건너뛰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셔도 괜찮습니다. 다만 무언가에 쫓기듯 급할 때, 정작 소중한 것을 방편으로 여기게 된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의 마음을 지금 돌아보면 무엇이 보이시나요?

수행자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이 그 음식을 즐기려고, 취하려고, 꾸미려고, 치장하려고 먹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오직 이 광야를 건너기 위해서만 그 음식을 먹지 않았겠는가?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먹는 자양분을 보아야 하느니라. 먹는 자양분을 완전히 알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도 완전히 알게 되고, 그것을 알면 성스러운 제자가 다시 이 세상에 올 매임이 없어지느니라.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te davāya vā āhāraṁ āhāreyyuṁ, madāya vā āhāraṁ āhāreyyuṁ, maṇḍanāya vā āhāraṁ āhāreyyuṁ, vibhūsanāya vā āhāraṁ āhāreyyun”ti? “No hetaṁ, bhante”. “Nanu te, bhikkhave, yāvadeva kantārassa nittharaṇatthāya āhāraṁ āhāreyyun”ti? “Evaṁ, bhante”. “‘Evameva khvāhaṁ, bhikkhave, kabaḷīkāro āhāro daṭṭhabbo’ti vadāmi. Kabaḷīkāre, bhikkhave, āhāre pariññāte pañca kāmaguṇiko rāgo pariññāto hoti. Pañca kāmaguṇike rāge pariññāte natthi taṁ saṁyojanaṁ yena saṁyojanena saṁyutto ariyasāvako puna imaṁ lokaṁ āgaccheyya.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앞선 두 편의 참혹한 장면이 여기서 뜻을 얻습니다. 부부가 아들의 살을 먹은 것은 즐기거나 꾸미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살아 건너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를 먹는 자양분 전체에 적용하시며, 먹는 자양분을 있는 그대로(오직 생존을 위한 것으로) 완전히 알면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 - 눈에 보이는 것, 소리, 냄새, 맛, 몸의 감촉에 대한 탐욕도 함께 이해되어 옅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완전히 이해되면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만드는 매임이 사라진다는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묵상

오늘 무언가를 먹거나 가지려 할 때, 정말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마음을 달래려는 것인지 잠깐 살펴보면 어떨까요? 어느 쪽이든 지금은 그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답을 서둘러 찾지 않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