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 - 창 삼백 자루에 찔리는 죄인

의식이라는 자양분이 지고 있는 무게를, 하루 종일 창에 찔리는 죄인의 비유로 보여줍니다.

수행자들이여, 의식이라는 자양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비유하면, 사람들이 도둑질하다 붙잡힌 죄인을 왕에게 데려가 “대왕이시여, 이 자는 죄를 지은 도둑입니다. 원하시는 대로 벌하소서”라고 아뢰면, 왕은 이렇게 말하리라. ‘가서 이 사람을 아침에 창 백 자루로 찌르라.’ 이에 사람들은 아침에 그를 창 백 자루로 찔렀느니라.

Kathañca, bhikkhave, viññāṇāhāro daṭṭhabbo? Seyyathāpi, bhikkhave, coraṁ āgucāriṁ gahetvā rañño dasseyyuṁ: ‘ayaṁ te, deva, coro āgucārī, imassa yaṁ icchasi taṁ daṇḍaṁ paṇehī’ti. Tamenaṁ rājā evaṁ vadeyya: ‘gacchatha, bho, imaṁ purisaṁ pubbaṇhasamayaṁ sattisatena hanathā’ti. Tamenaṁ pubbaṇhasamayaṁ sattisatena haneyyuṁ.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네 번째이자 마지막 비유, 의식의 자양분으로 넘어갑니다. 도둑질하다 붙잡힌 죄인이 왕 앞에 끌려가 형벌을 선고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침에 창 백 자루로 찌른다는 형벌은 이 편에서 처음 나오지만, 뒤이어 한낮과 저녁에도 똑같은 형벌이 되풀이됩니다. 세존께서는 이 되풀이를 통해 의식이라는 자양분이 짊어지는 무게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쌓여 간다는 것을 보이려 하십니다.

묵상

하루 동안 작은 부담이 여러 번 쌓이면 처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 적이 있으신가요? 그럴 때 그 무게를 한꺼번에 다 짊어지려 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몫만 살펴보면 조금 가벼워질까요?

그러자 왕은 한낮에 이렇게 물으리라. ‘그 사람이 어떠한가?’ “대왕이시여, 여전히 살아 있나이다.” 왕은 다시 이렇게 말하리라. ‘가서 그 사람을 한낮에 창 백 자루로 찌르라.’ 이에 사람들은 한낮에 그를 창 백 자루로 찔렀느니라.

Atha rājā majjhanhikasamayaṁ evaṁ vadeyya: ‘ambho, kathaṁ so puriso’ti? ‘Tatheva, deva, jīvatī’ti. Tamenaṁ rājā evaṁ vadeyya: ‘gacchatha, bho, taṁ purisaṁ majjhanhikasamayaṁ sattisatena hanathā’ti. Tamenaṁ majjhanhikasamayaṁ sattisatena haneyyuṁ.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아침에 이어 한낮에도 같은 형벌이 되풀이되는 대목입니다. "여전히 살아 있나이다"라는 대답과 왕의 명령이 아침과 거의 같은 말로 반복되는 것은 원문 자체의 짜임이며 임의로 줄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그대로 되풀이함으로써 이 사람이 겪는 고통이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하루에 걸쳐 쌓여 간다는 것을 독자가 직접 느끼게 합니다. 저녁에 한 차례가 더 남아 있습니다.

묵상

몇 번이고 같은 어려움이 되풀이될 때, '아직 견디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을 말해 주는 것 같으신가요? 그 견딤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러자 왕은 저녁에 이렇게 물으리라. ‘그 사람이 어떠한가?’ “대왕이시여, 여전히 살아 있나이다.” 왕은 다시 이렇게 말하리라. ‘가서 그 사람을 저녁에 창 백 자루로 찌르라.’ 이에 사람들은 저녁에 그를 창 백 자루로 찔렀느니라.

Atha rājā sāyanhasamayaṁ evaṁ vadeyya: ‘ambho, kathaṁ so puriso’ti? ‘Tatheva, deva, jīvatī’ti. Tamenaṁ rājā evaṁ vadeyya: ‘gacchatha, bho, taṁ purisaṁ sāyanhasamayaṁ sattisatena hanathā’ti. Tamenaṁ sāyanhasamayaṁ sattisatena haneyyuṁ.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아침, 한낮에 이어 저녁까지 같은 형벌이 세 번째로 되풀이되며 비유의 형벌 장면이 완결됩니다. 이로써 그 사람은 하루 동안 창 백 자루씩 세 차례, 도합 삼백 자루에 찔린 것이 됩니다. 세 번을 그대로 되풀이해 보여 준 것은 다음 편에서 나올 "창 삼백 자루"라는 총량을 독자가 직접 세어 실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죄인은 뒤에서 의식이라는 자양분이 실제로 짊어지는 무게를 헤아리는 잣대로 다시 등장합니다.

묵상

하루 종일 힘든 일이 이어질 때, 그 하나하나의 무게를 다 헤아려 본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그저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가만히 짐작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고, 굳이 답을 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수행자들이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하루에 창 삼백 자루로 찔린다면 그로 인해 괴로움과 근심을 겪지 않겠는가? “세존이시여, 창 한 자루에 찔려도 괴로움과 근심을 겪을 터인데 하물며 창 삼백 자루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수행자들이여, 이와 같이 의식이라는 자양분을 보아야 하느니라. 의식을 완전히 알면 정신과 물질을 완전히 알게 되고, 그것을 알면 성스러운 제자에게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어지느니라.

Taṁ kiṁ maññatha, bhikkhave, api nu so puriso divasaṁ tīhi sattisatehi haññamāno tatonidānaṁ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iyethā”ti? “Ekissāpi, bhante, sattiyā haññamāno tatonidānaṁ dukkhaṁ domanassaṁ paṭisaṁvediyetha; ko pana vādo tīhi sattisatehi haññamāno”ti. “Evameva khvāhaṁ, bhikkhave, viññāṇāhāro daṭṭhabboti vadāmi. Viññāṇe, bhikkhave, āhāre pariññāte nāmarūpaṁ pariññātaṁ hoti, nāmarūpe pariññāte ariyasāvakassa natthi kiñci uttarikaraṇīyanti vadāmī”ti.

상윳따 니까야 SN 12.63 아들의 살점경 (Puttamaṁsasutta)

배경

세 차례의 형벌이 쌓여 이룬 결론을 밝히는, 이 경의 마지막 편입니다. 창 한 자루만으로도 괴로운데 삼백 자루라면 말할 것도 없다는 대답은, 앞서 세 번 되풀이해 보여 준 형벌의 무게를 숫자로 확인시켜 줍니다. 세존께서는 이를 의식이라는 자양분에 적용하시며, 의식을 완전히 알면 정신과 물질(몸과 마음의 결합체) 전체를 완전히 알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네 가지 자양분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납니다. 원문 끝에는 이 경이 모음 안에서 몇 번째인지 적은 일련번호가 붙어 있으나, 이는 편집자의 표시이지 본문이 아니므로 인용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묵상

쌓여만 가는 것 같던 괴로움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뿌리가 무엇인지 조금 더 잘 보이지 않을까요? 몸과 마음이 어떻게 얽혀 그 무게를 만들어 내는지,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살펴보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