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한 것과 그것을 힘써 닦아야 하는 이유

부처님이 굳이 골라 설하신 네 가지 진리와, 그것을 닦아야 하는 까닭

“수행자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설하였는가?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나는 설하였느니라. 어찌하여 이것을 설하였는가? 이익이 되고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되며, 싫어하여 떠남·사라짐·소멸·고요함· 뛰어난 지혜·바른 깨달음·열반으로 이끌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설하였느니라.”

Kiñca, bhikkhave, mayā akkhātaṁ? ‘Idaṁ dukkhan’ti, bhikkhave, mayā akkhātaṁ, ‘ayaṁ dukkhasamudayo’ti mayā akkhātaṁ, ‘ayaṁ dukkhanirodho’ti mayā akkhātaṁ,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mayā akkhātaṁ. Kasmā cetaṁ, bhikkhave, mayā akkhātaṁ? Etañhi, bhikkhave, atthasaṁhitaṁ etaṁ ādibrahmacariyakaṁ etaṁ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upasamāya abhiññāya sambodhāya nibbānāya saṁvattati; tasmā taṁ mayā akkhātaṁ.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심사빠 숲경 (Sīsapāvanasutta)

배경

앞 절이 "설하지 않은 것"을 다루었다면, 이 절은 그와 정확히 대칭을 이루며 "설한 것"을 밝힙니다. 부처님이 골라 설하신 것은 괴로움·괴로움의 일어남·괴로움의 소멸·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 이 네 가지뿐입니다. 그리고 앞 절에서 부정형으로 나열됐던 아홉 가지 이유(이익이 됨, 청정한 삶의 근본이 됨, 일곱 가지로 이끎)가 이 절에서는 그대로 긍정형으로 되풀이됩니다. 같은 잣대로 재어 이번에는 합격한 것이 이 네 가지라는 뜻입니다.

묵상

수많은 정보와 질문 가운데 "지금 내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라는 하나의 잣대로 추려 본다면, 지금 붙들고 있는 생각 중 몇 가지나 남을까요?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을 가르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 본다면 무엇일까요?

“그러므로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데 힘써 닦아야 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는 데까지 힘써 닦아야 하느니라.”

Tasmātiha, bhikkhave, ‘idaṁ dukkhan’ti yogo karaṇīyo …pe… ‘ayaṁ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ogo karaṇīyo”ti.

상윳따 니까야 SN 56.31 심사빠 숲경 (Sīsapāvanasutta)

배경

경 전체를 마무리하는 결론입니다. 앞서 밝힌 네 가지 진리를 안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각에 대해 "힘써 닦아야 한다"는 실천의 요구로 끝맺습니다. 원문은 첫째와 넷째 진리만 온전히 적고 가운데 둘째·셋째 진리는 "…pe…"라는 표시로 줄여, 넷 모두에 같은 실천이 적용됨을 나타냅니다. 이 경의 마지막 문장 "이로써 첫 번째 경이 끝나니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이 경이 품(장)의 첫 번째 경임을 적어 둔 편집자의 표시입니다.

묵상

아는 것을 실제로 매일 조금씩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흔히 큰 간격이 있지요. 오늘 하루, 이미 알고 있는 것 가운데 딱 하나만 실제로 해 본다면 무엇을 고르고 싶은가요? 거창한 결심이 아니어도 괜찮아요.